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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영 칼럼](10)이사
[양대영 칼럼](10)이사
  • 양대영 기자
  • 승인 2013.04.04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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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문덕수-

이삿짐을 뒤따라 문을 나서니
이웃집 강아지, 꼬리 살래살래 저으며 다가와
몇 번을 맴돌다가
내 발등에 나부시 드러누워 버린다
자기의 전체를 내맡기듯이
출애굽도 베를린 장벽을 넘는 것도 아니지만
한동안 멀거니 서 있으려니 어이없어
쪼그리고 그의 목덜미를 쓰다듬어도 길을 터주지 않네
늦사리로 눈치 채고
뒤쪽 내 구석방 창가로 돌아가
전날 내 입원실 창 앞에서
아픔과 절망을 지켜보다가 퇴원 때 따라와
내내 집안의 봄날을 밝히던 목련나무께로 가서
가지 끝 휘어잡고 밑둥에 대고 몇마디 건넷것다
이러히 세상 어디든 훌훌 쉬 떠날 수 없음은
숱한 인연의 그물매듭 얽혔기 때문
제 긴 꼬리 좇아 빙글빙글 도는
조르즈상드1)의 개야! <전문>
 

 
이사를 가려 문을 나서자, 그것도 이웃집 강아지가 아는 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맴돌다가 발위에 드러누워 버린다. 한동안 있기도 그래서 쪼그려 앉아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어도 가만히 길을 막는다. 화자는 살던 집 구석방 창가로 돌아가 (전날 내 입원실 창 앞에서 아픔과 절망을 지켜보다가 퇴원 때 따라와 내내 집안의 봄날을 밝히던 목련나무께로 가서 가지 끝 휘어잡고 밑둥에 대고 몇 마디 한다) 아마도 ‘이사간다’고쯤 말을 건냈을 것이다. 무릇 사람의 삶이란 게 이런 것일 게다. 시인은 사람뿐만 아니라 옆집의 개와 창가의 목련마저도 인연의 대상으로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훌훌 쉽게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조르즈 상드의 개가 자기꼬리를 좇아 빙빙 돌아가는 것처럼, 시인은 사람과 강아지와 나무와 모든 사물들과의 숱한 인연의 그물매듭으로 얽혔기 때문에 훌훌 떠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인연의 끈질김이 어디 인간에게만 한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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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르즈상드: 쇼팽의 피아노곡에 애인인 조르즈 상드의 개가 꼬리를 좇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을 그린 ‘강아지 왈츠’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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