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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영 칼럼](9)상현
[양대영 칼럼](9)상현
  • 양대영 기자
  • 승인 2013.03.14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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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다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상현은 보름이 지나 위쪽으로 패인 달이다. 보름을 기점으로 하여 점점 늦게 뜬 달이 새날이 밝아도 서산에 다 떨어지지 못하여 하늘에 걸터 앉아있는 달이다. 우리 문학사에 달은 별과 함께 수많은 글에서 좋은 글감으로 등장한다. 별과 달이 있는 곳이 하늘이요, 우리가 직접 다가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하여 그저 상상속의 존재로만 알아오는 것이 별과 달이다. 그래서 별과 달은 상상 속에 그려볼 수 있어서 더욱 신기한 존재로 알아오고 있다.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를 비롯하여 수많은 노랫말과 글들에서 달이 등장한다. 밤은 컴컴하기만 한데, 달이 있어서 얼마나 운치 있고 조요한가. 헌데 이제 와서 별과 달이 상상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대낮같은 도심에서 달과 별이 보일 리가 없고, 우주선이 달나라에 가고 달나라에 가면서 신비로웠던 것들이 차츰 벗겨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달은 달이요, 별은 별이다. 우리의 정서상 달과 별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는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온화한 초여름 달밤에 들장미 가득 향기 뿜는 들판이라도 거닐어 보라. 달의 운치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아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별빛 드는 들창을 열어놓고 밤하늘을 보라. 우주의 아름다움이 한바탕 몰려 들 것이다.
이 시는 『소월시 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시이다. 시인이 수상소감에서 밝힌 글을 소개한다. “슬픔을 줄곧 노래해왔다는 점에서, 서정적 전통의 자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연을 통한 시적 발견에 주로 의존해왔다는 점에서, 저는 소월의 식솔 또는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월의 시가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은 자의 한없이 낮은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어떤 우연과 방임, 그리고 허무 속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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