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현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다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그러나 달은 달이요, 별은 별이다. 우리의 정서상 달과 별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는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온화한 초여름 달밤에 들장미 가득 향기 뿜는 들판이라도 거닐어 보라. 달의 운치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아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별빛 드는 들창을 열어놓고 밤하늘을 보라. 우주의 아름다움이 한바탕 몰려 들 것이다.
이 시는 『소월시 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시이다. 시인이 수상소감에서 밝힌 글을 소개한다. “슬픔을 줄곧 노래해왔다는 점에서, 서정적 전통의 자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연을 통한 시적 발견에 주로 의존해왔다는 점에서, 저는 소월의 식솔 또는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월의 시가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은 자의 한없이 낮은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어떤 우연과 방임, 그리고 허무 속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작권자 © 채널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