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ㆍ여야, 개헌 공감하지만 논의 시기는 '온도차'
정치권에서 헌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개헌을 제안했고, 새누리당도 맞장구를 쳤다.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제정돼 그동안 9번 개정했다.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개헌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초된 채 25년째 '87년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물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개헌 의지를 드러내면서 개헌에 불씨를 지폈다.
현재 정치권에선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는 논의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의원내각제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정당정치가 취약하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개헌 방향과 함께 시기도 문제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 시작하지 않으면 동력을 잃을 수 있는 만큼 하루 빨리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개헌에는 공감하지만 정권이 안정된 후에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4년 중임제·분권형 대통령제 대안
정치권에선 현행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87년 체제'의 청산에 공감하고 있다. 집권 초기 제왕적인 권한을 누리다가 임기 3~4년 후에는 레임덕에 빠지는 악순환을 끊고 책임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방안이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다.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은 국정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재선을 의식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박 당선인도 4년 중임제를 언급한 바 있다.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은 "내각제는 시기상조이고, 4년 중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논의해야 한다"며 "4년 중임제를 시행하되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 쪽만 맡고, 총리나 수상은 실질적인 내치를 맡아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문병호 의원 역시 "87년 체제를 25년째 그대로 가져갈 수 없다"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기 위해 대통령 권한 중에 감사원을 이관하고 예산 편성권, 법률안 제출권 등을 국회와 나눠갖는 분권형 체제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4년 중임제는 분권형을 전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임기만 8년 늘려서는 안 되고,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한다는 전제 아래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도 "내각책임제보다는 4년 중임제 논의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감사원을 관장하면서 전횡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국회로 옮겨 감사원이 제대로된 감사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은 "4년 중임제로 가면 불필요한 선거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고, 대선과 총선을 묶고 2년 후에 지방선거를 하면 예측가능한 정치가 된다"며 "내각제도 검토 대상이지만 4년 중임제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통령 임기는 5년,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인 데다 각종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까지 합하면 선거가 없는 해가 없을 정도다. 대선과 총선을 한꺼번에 치러 선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같은 당 전병헌 의원은 "박 당선자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입장인 데다 현재 권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상당히 무르익어 있다"며 "의원내각제에 찬성하지만 시기상조라면 4년 중임제를 시행하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책임총리 권한을 명확하게 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은 "사회가 다양해진 만큼 권한을 대통령에게 집중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포르투갈처럼 대통령제가 가미된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좋다. 지금부터 논의해도 개헌하는 데 1~2년이 걸리는 만큼 하루 빨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헌 시기 놓고 온도차, 설 이후 본격화될까?
권력구조의 개편 방향에 대해 여야는 물론 각 정파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이로 인해 정치적 소용돌이가 불 보듯 뻔한 만큼 여권 일각에서는 개헌 논의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글로벌 경제가 어렵고, 안보 문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힘을 분산시켜서는 안 된다"며 "박 당선인이 구상했던 변화와 쇄신을 통해 어느 정도 정권을 안정시켜놓고 개헌 문제를 논의하는 것도 좋다"고 밝혔다.
하지만 야권을 비롯해 여권 일부의 생각은 다르다.
민주통합당 이낙연 의원은 "여야 지도부가 개헌에 대한 합의를 하고, 개헌특위를 만들어서 가동해야 한다"며 "9번의 개헌이 6월 항쟁처럼 대승적인 에너지에 의해 이뤄졌다. 정부 초기에 하지 않으면 개헌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다"고 우려했다.
같은 당 문병호 의원도 "개헌은 정치권의 이해 관계가 많이 얽혀 있는 만큼 임기 1년 내에 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슈에 밀리고 힘이 떨어진다"며 "4월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만들고 본격적인 개헌 문제를 논의하는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은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정치 이슈가 개헌에 몰리고, 새 대통령의 개혁에 포커스에서 비켜날 수 있다"면서도 "임기 중반 이후에 가서 한다는 것은 동력이 떨어져서 하기 어렵다"고 공감했다.
지난해 9월 '분권형개헌추진 국민연합'을 발족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개헌특위를 구성해 올해 상반기 중에 개헌을 마무리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여야 의원 37명으로 구성된 '분권형 개헌 추진 19대 의원 모임'도 조만간 다시 가동하면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새누리당은 당장 개헌특위를 구성하는 것보다 2월 임시국회에 신설되는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서 개헌 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위해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인사청문회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개헌 논의에 힘이 실릴 수 있을 지 주목된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