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도 출신 작가 현기영씨의 자전적 소설인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모습이다. 이 소설에서는 푸른 바다와 그 위의 푸른 하늘로 시원한 바람에 막힘없이 불어와 날리는 머리카락과 같은 작가의 가벼운 영혼이 함박이굴, 외갓집, 눈 속의 한라산, 도두봉, 선반물, 용연, 정드르 마을 등 어린 시절의 추억이 녹아 있는 공간을 차례대로 포옹하며 안내하고 있다.
기억 희미한 그 곳을 지날 때 마다 고향 함박이굴의 막막한 어둠, 어둠속의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던 외갓집의 명랑한 웃음, 토벌대의 습격을 피해 이리저리 쫓겨나고 희디 흰 한라산에 소름 끼치게 붉게 뿌려진 선혈, 그 궁핍한 시절에 풍요의 상징처럼 떠오르게 했던 선반물의 풍성한 지하수, 전란 중 겨울 북풍이 몰아치던 새 고향 정드르 마을에서의 춘궁기 시절 등의 가슴 먹먹한 추억이 이 섬의 대지와 결합하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엄마‘이다. 봉앳불과 방앳불을 피운 자들이 정작 싸워야 할 적은 알지도 못한 채 서로 총부리와 죽창을 부딪치고, 토벌대의 부자비한 소개 작전을 통해 쓰러진 상여 없는 주검 속에서도, 바람같이 홀연히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무지막지한 풍파를 견디어 냈던 엄마, 기쁨을 선뜻 믿지 않고 먼저 한숨을 내쉬며 모진 풍랑의 세월을 경계하며 버티어 온 이가 엄마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올 해 이 이야기에 다시 빠져있던 기간, 특히 최근 들어 4.3과 관련한 역사 왜곡이 우려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러 유족들과 도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이 사건을 두고 국가의 보조를 받는 민간단체 등 여러 기관․단체에서 그 유족들의 눈물과 기도로 겨우 바로잡힌 역사를 거스르려 하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결코 4. 3과 관련된 이들을 원망하지 않은 채 다만 그 시대의 아픔을 자기 유년의 시절의 추억과 맞물리며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것처럼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4. 3을 기억하고 아직도 두려워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유족들과 도민의 가슴에 박힌 아픔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절실히 그리워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