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밤 '울랄라 부부' 신현준(44) 김정은(36)의 사회로 서울 여의도동 KBS홀에서 열린 제49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광해'는 의상상, 미술상, 음악상, 음향기술상, 토요타인기상, 조명상, 편집상, 기획상, 시나리오상, 촬영상, 영상기술상, 그리고 남우조연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최우수작품상을 따냈다.
'도둑들'(감독 최동훈)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관객 1000만명을 모은 영화, 배우들의 호연, 잘 짠 스토리, 코미디와 진정성의 조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 등으로 수상은 예상됐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시상식 1부에서 주요 기술상을 챙기며 환호한 '광해' 스태프들은 10개 이상의 상을 가져가게 되자 다른 팀들을 의식하며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류승룡(42)이 "'광해'가 앞에서 많은 상을 탔으니 나는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수상소감을 말하겠다"고 추창민(46) 감독에게 양해를 구했을 정도다.
계속되는 수상에 MC 신현준은 "오늘 광해의 날이군요", "광해, 대단합니다", "광해가 싹쓸이했습니다" 등의 멘트로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장내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시상자로 나온 이덕화(60)는 "'광해'가 대종상 시상식의 메인이 됐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받은 남우주연상을 물려주려 무대에 오른 박해일(35)은 "모든 영화인들 수고하셨다"는 말로 위로를 건넸다.
올해부터 대종상영화제는 심사방식을 바꿨다. 투표로 작품을 선정하던 기존의 제도 대신 최고 10점부터 최하 5점까지 점수화,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정성'을 최우선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피에타' 연출자 김기덕(52) 감독에게 심사위원 특별상을 시상하러 나온 김기덕(79) 심사위원장은 "수상작이 특정 작품에 몰린 것 같다는 의구심을 가질 것 같다"며 해명부터 해야했다. "이전에는 모든 후보작들을 심사하며 가장 좋은 작품이 무엇인가를 비교 평가했다. 하지만 올해는 한 작품의 심사가 끝날 때마다 평점을 기입, 봉해 넣어뒀다. 위원장인 나도 이런 결과가 나올줄 몰랐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절대평가였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이 영화인들을 설득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 빚어졌다.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는 것을 알고 참석한 김 감독은 수상 전 자리를 떴다. 대리 수상자가 "건강에 문제가 있어 급히 나갔다"고 했지만, 대형영화의 스크린 독점에 문제를 제기해온 김 감독이 이날 영화제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무언의 시위를 했다는 지적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피에타'는 김 감독 외에 조민수(47)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광해'의 질주 앞에 올 2월 개봉, 부산 뒷골목 조폭들의 이야기로 호평을 받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괴물'(2006)을 제치고 6년 만에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갈아치운 '도둑들'(감독 최동훈)도 김해숙(57)의 여우조연상 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대한민국에 첫사랑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을 비롯해 '댄싱퀸'(감독 이석훈),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 '도가니'(감독 황동혁) 등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도가니' 제작 관계자는 "역시 상복이 없는 것 같다.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가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겠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남우주연상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극찬을 들은 최민식(50), 사법부의 이면을 드러낸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꼬장꼬장한 '김명호 교수'를 연기한 안성기(60)를 제치고 할리우드 영화 '레드2' 촬영차 해외에 머무느라 시상식에 불참한 이병헌에게 돌아갔다.
시청자들은 "심사위원장이 올해 심사방법이 바뀌었다는 필요 없는 변명까지 하는 시상식이란…",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 "좋은 영화가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으로 오히려 욕먹게 생겼네요", "몰아주는 시상식, 몰상식?", "2시간동안 광해상을 시청했습니다", "스코어로 가려진 상술과 얄팍함의 조화", "스스로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시상식", "대한민국 톱스타들 모아놓고 모두 들러리로 만든 시상식"이라며 비난했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