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TV 주말극 ‘신사의 품격’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장동건(40)이 주연한 한·중 합작영화 ‘위험한 관계’가 9월27일 중국에서 흥행성적 1위로 출발한 여세를 몰아 11일부터 한국 극장가를 집어삼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2003년 배용준(40) 이미숙(52) 전도연(39) 주연 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 이재용)로 한 번 찾아온 적이 있는 프랑스 작가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1782년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화다. 그보다 앞서 1959년 프랑스에서 로제 바딤 감독이 처음 영화화한 이후 미국 할리우드에서 존 말코비치(59)의 동명영화(1988), 콜린 퍼스(52) 주연의 ‘발몽’(1989), 라이언 필립 주연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9) 등으로 이어진 불세출의 로맨스물이다.
한국에서 주연남우 장동건과 허진호(49) 감독 등 주요스태프가 참여했고, 중국에서는 주연여우 장쯔이(33·章子怡), 장바이즈(30·張柏芝)를 비롯한 배우들과 자본이 투입됐다. 자본 합작이 아닌 한국의 인력·기술과 중국의 인력·자본 합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양국 합작물이다.
1930년대 번성한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장동건은 부호 바람둥이 ‘셰이펀’, 장바이즈는 재력가인 사교계의 여왕 ‘모지에위’, 장쯔이는 남편과 사별한 뒤 자선사업에만 매진해온 정숙한 ‘뚜펀위’를 호연했다. ‘스캔들’로 보면 장동건이 배용준, 장바이즈가 이미숙, 장쯔이가 전도연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해외에서 여러 차례 제작된 것으로도 모자라 국내에서도 리메이크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장동건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 동안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마이웨이’ 등 주제에 넘게 대작들의 주인공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모든 관객층을 위한 보편적인 연기를 해야 했죠. 그래서 꼭 한 번 디테일한 연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위험한 관계’ 출연 제안이 들어왔어요. 지금까지 해온 캐릭터와 전혀 달랐던 데다 섬세하게 찍는 허진호 감독님이 연출하는 작품이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죠. 리메이크작이라는 부담감은 전혀 없었어요.”

그렇다면 다른 버전 ‘위험한 관계’들은 봤을까. 특히 ‘스캔들’은.
“기존 작품들에 워낙 명배우들이 출연했죠. 봤더라면 당연히 부담을 가졌을텐데 마침 보지 않았어요. ‘스캔들’이야 상영 당시에는 봤지만 이번 작품에 출연하기로 하고서는 새로 보지 않았습니다”며 “저 스스로 캐릭터를 잡은 뒤에야 비로소 다른 작품들을 봤어요”라고 털어놓았다.
다른 버전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보호막을 친 셈이다. 그렇다면 장동건은 그들과 어떻게 차별화하려 했을까.
“처음에 음산하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허 감독님은 오히려 밝고 유쾌한 캐릭터를 생각하고 있었지요. 전혀 달랐던 거에요. 그래서 감독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눠 초반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에서 점점 유머러스하게 변해가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감독님의 뜻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기를 해왔는데 허 감독님은 아니더라구요. 마음대로 해보라는 스타일이었어요. 낯설었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배우로서 캐릭터에 관해 더욱 많이 생각할 수 있어 좋더군요. 결과적으로 더 잘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장동건은 앞서 2001년 한·일 합작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감독 이시명), 2006년 한·중 합작 ‘무극’(감독 첸카이거), 2010년 한·미 합작 ‘워리어스 웨이’(감독 이승무) 등에 출연했다. ‘위험한 관계‘까지 해외 합작영화만 4편이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합작 영화 출연이 많다.
장동건은 “합작영화는 다른 나라 영화인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고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특히 중국 같은 경우에는 정서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이질감이 별로 없어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죠”라고 수용했다.

앞으로도 합작영화에 출연할 뜻이 있다는 얘기인데….
“네. 물론입니다. 언어라는 장벽이 있긴 하지만 중국배우 양조위도 더빙을 하는 것으로 본다면 별 문제도 아니죠. 이번에도 중국어 연기를 했지만 원래는 한국어 연기를 하고 더빙을 할 계획도 있었거든요. 좋은 작품이 있다면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김의석(55) 위원장은 “한국 영화는 올해 국내에서 총 관객 1억명 시대를 열게 된다. 그러나 인구가 5000만명인 만큼 우리의 시장은 작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우리도 외부로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다행히 바로 옆에 중국이라는 최대 시장이 있다. 중국인들이 우리 영화를 공식적으로 많이 안 볼 뿐이지 불법으로 많이 보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 같은 경우 불법 복제물이 1억장이나 팔렸을 정도다. 이제 그런 돈을 우리가 정식으로 회수해야 한다. 한중합작영화 제작도 좋은 방법이다. 합작영화를 제작하면 30%로 제한된 중국의 외국영화 쿼터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훨씬 넓은 시장을 열 수 있다”고 짚었다.
한류 톱스타 장동건의 앞선 생각이 한국 영화 중흥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