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더홀딩스와 경기도 고양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덕분에 독립구단이 탄생했다.
고양 원더스(구단주 허민)는 당시 "선수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두꺼운 선수층을 제공하며 야구팬과 국민에게는 7전8기의 성공 스토리를 선사하고자 한다"고 창단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는 지난해 11월 프로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거나 방출된 이들을 대상으로 선수를 선발한 고양 원더스는 SK 와이번스를 지휘한 '야신' 김성근(70)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고양 원더스는 전북 전주에서 두 차례 국내 전지훈련을 실시한 뒤 올해 1월 일본 고지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사실 놀라운 행보였다. 고양 원더스는 정식으로 프로야구 2군리그에 편입돼 시즌을 치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독립구단이 해외 전지훈련을 한다는 사실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혹독한 훈련을 시키기로 유명한 김 감독은 프로 1군 선수들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지훈련 내내 강훈을 시켰다.
그 혹독한 훈련이 밑바탕이 된 것일까.
올해 퓨처스리그(2군리그)에서 번외경기로 48경기를 치른 고양 원더스는 5할 가까운 승률을 기록했다.
고양 원더스의 가장 큰 수확은 무려 5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했다. 창단 당시 3년 동안 매년 1, 2명은 프로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구단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것이었다.
좌완 투수 이희성이 지난 7월 LG 트윈스에 입단해 스타트를 끊었고, 내야수 김영관이 또다시 LG의 부름을 받았다. 이어 외야수 강하승(23)이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고, 외야수 안태영과 내야수 홍재용이 차례로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한화 이글스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면서 김 감독이 차기 사령탑 후보로 거론됐지만 허민 구단주의 끈질긴 설득 속에 김 감독은 고양 원더스와 2년 재계약을 맺었다. 고양 원더스는 이제 미래를 바라보며 한 걸음 더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야구 뿐 아니라 사회에도 '메시지' 던져
패자, 낙오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자아낸 '재기의 스토리' 때문인지 정치권 인사들도 고양 원더스를 방문했다. 고양 원더스라는 구단이 사회적으로도 어떤 '메시지'를 던졌다는 이야기다.
김 감독은 "SK 감독 시절부터 사회에 뭔가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SK 시절에는 나와 같은 연배들이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어 '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이고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기 생각을 바꾸고, 하겠다는 신념이 있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고양 원더스에 온 뒤로는 어떨까.
김 감독은 "모든 한계는 자신이 설정하는 것이다. 잠재능력만 개발하면 해낼 수 있다. 기회를 놓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기회를 살리면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구단을 이끌고 있는 하송 단장은 "구단 창단 자체가 기부를 기반으로 했다. '다시 주목받을 수 있고 기회를 얻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고, 콘텐츠가 야구가 됐을 뿐이다"며 "구단 컨셉트 자체는 사회면에 실릴법한 것들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해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있으니 주목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 단장이 전해준 허민 구단주의 말은 구단주와 김 감독이 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허 구단주는 하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오는 것 같다. 그런데 준비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기회는 없다. 딱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오는 것 같다."
허 구단주도 수 차례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서서 현재의 자리까지 온 인물이다. 한 번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서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하 단장은 "허 구단주는 잠재성은 있는데 준비가 덜 됐다고 해서 외면받지 않고, 준비가 안된 이들을 준비시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은 '상식 초월한 열정'
세상에 이 같은 야구단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고양 원더스가 프로 선수를 5명이나 배출하며 사회에 재기의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상식을 넘어서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감독은 "꿈을 이루려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열정이 있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상식적인 테마를 이루기 위해서도 상식을 넘는 열정이 필요하다. 내가 SK 시절 우승을 시키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훈련을 시키지 않았는가"라며 "단순한 열정만 가지고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고양 원더스는 탄생부터가 허 구단주의 야구에 대한 강렬한 열정 속에서 태어났다.
허 구단주가 야구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고, 미국유학 중이었던 2008년 너클볼을 배우고 싶다며 1997년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에 오른 필 니크로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쳐 너클볼을 배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유명한 일화다.
'꿈'이 있다면 누가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허 구단주의 꿈은 야구단을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이뤄냈다.
허 구단주의 열정은 김 감독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김 감독은 "꿈과 현실을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려는 사람이다. 야구단을 갖고 싶은 것이 꿈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매년 50억원을 투자한다"며 "옆에서 볼 때 '저런 것이 젊은 사람의 매력이구나'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하 단장은 "허 구단주께서 요즘도 가끔 새벽까지 영상을 보며 너클볼을 연구했다는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며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프로에 간 선수들의 기록까지 체크한다. 정에 따라 움직이고, 정이 깊은 사람이다"고 전했다.
구단의 탄생이 구단주의 열정 덕분이었다면 고양 원더스가 프로 선수를 5명이나 배출한 것 뒤에는 김 감독의 열정이 있었다.
야구만 보고 살아온 김 감독에게 야구는 그야말로 종교나 다름없다. 야구 이외의 생활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 지도에 대한 열정도 엄청나다.
선수들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문제점을 끝까지 파고 들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어깨 인대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직접 펑고를 치며 선수들을 지도했다.
SK 사령탑 시절에도 지독하게 훈련을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김 감독은 고양 원더스에서는 더 심하게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실패했다는 과거를 잊어야 한다, 과거는 잘 됐든, 나빴든 소용이 없다. 과거를 버리고 앞으로 갈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미래를 바라보도록 유도했다.
허 구단주, 김 감독을 옆에서 보좌하고 있는 하 단장은 "감독님과 구단주님이 닮으신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끝까지 파고 들어서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고양 원더스가 창조할 '기적'은 이제 시작
다른 이들이 보기에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1년을 김 감독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프로에 몇 명을 보내겠다, 20승을 하겠다는 목표를 잡았지만 해놓고 보니 또 아쉬운 것이 많다"고 했다.
하 단장은 "주목을 받고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성공 여부를 따지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 이제 한 번 했을 뿐이다"며 "올해 수확은 앞으로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기초작업은 일단 성공적으로 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고양 원더스는 내년에 '새로운 기적'을 창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에도 고양 원더스는 일본 고지에서 해외 전지훈련을 할 계획이다.
김 감독은 "사람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한하고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고양 원더스라고 하는 것을 어느 위치에 세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프로에 선수를 보내는데 성공했으니 이제 가서 즉시 통할 수 있는 선수를 키워내야 한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내년에 퓨처스리그에 들어가 경기를 하게 될 경우 일주일에 6번 경기를 해야 한다. 거기서 올해만큼 성적을 내면 굉장히 큰 업적이다"며 "이것을 어떻게 대비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 단장은 "감독님, 구단주 모두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는 분들이다. 내년이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고양 원더스를 맡으며 책임감이 막중하다고 했던 김 감독은 "고양 원더스가 프로야구의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 선수를 보급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며 "구단, 야구인들이 고양 원더스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끝을 맺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