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7'의 배우 이시언이 7일 서울 충무로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cdj@newsis.com 2012-09-07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이시언(30) 말고는 1997년 무렵의 고등학생에 대해 제대로 아는 연기자가 거의 없다.
서인국(25)은 초등학생, 정은지(19)와 호야(21)는 미취학 아동이었다. 은지원(34)은 평범한 학생 신분이 아닌 그들의 우상이었다. 여학생들에게 'HOT'와 '젝스키스'는 세상에 전부였고 다마고치, 워크맨, 삐삐 등이 첨단이던 1997년을 추억하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이야기다.
"제가 당시 이야기를 많이 해줬죠. 옷은 어떻게 입고 다녔는지 설명해 주고 '이런 노래는 들어봤니?' 물어보기도 했고요. 은지는 1997년에 겨우 네 살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HOT의 노래 '전사의 후예'도 드라마에서 처음 불러봤다고 해요."
여학생들에게 HOT와 젝스키스 멤버가 '우리 오빠'였다면, 교복을 입던 이시언의 선망 대상은 누구였을까? 그룹 'NRG'의 팬클럽 회원이었다는 답이 나온다.
"PC통신 유니텔에 '천재일우'라는 'NRG' 팬클럽이 있었어요. '할 수 있어'라는 노래가 좋아서 가입을 했죠. 가끔 멤버들이 채팅방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그때 고인이 된 김환성씨와 채팅하는 영광을 안았죠. '어떻게 하면 춤을 잘 추느냐'고 물으니 '열심히 하면 뭐든지 다 된다'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나요.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믿어지지 않았죠."
이시언은 속사포처럼 떠드는 장난스러운 수다쟁이 '방성재'를 연기했다. MBC TV '친구, 우리들의 전설', SBS TV '닥터 챔프'와 '파라다이스 목장', '무사 백동수' 등 여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동안 이시언의 존재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다 '응답하라 1997'에서 부산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코믹한 대사와 동작을 쏟아내는 '방성재' 역으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똑똑히 알리기에 이르렀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응답하라 1997'의 배우 이시언이 7일 서울 충무로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cdj@newsis.com 2012-09-07
여섯 명의 남녀 중 연기를 본업으로 하는 출연자도 이시언과 신소율(27) 외에는 없다. 가수 출신 연기자이거나 처음 연기에 도전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주연으로 캐스팅됐을 때 '과연 저 드라마가 잘 될까' 의문의 시선을 보내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연출자 신원호(37) PD마저 "이번 캐스팅의 콘셉트는 'PD가 미쳤어요'다"라고 했으랴.
"솔직히 처음에는 가수들이 우리 밥그릇을 차고 들어온다는 부정적인 편견이 있었어요. 팬이 많으니 인지도 면에서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서인국, 정은지, 호야, 은지원 모두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고요. 저야 '방성재'라는 캐릭터가 워낙 다른 배역과 다르기 때문에 돋보였던 것이지 같은 캐릭터로 연기했다면 제가 묻힐 수도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어요. 특히 서인국과 정은지의 발전 가능성은 대단해요."
'이시언의 무엇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주저없이 '부산사투리'를 손꼽았다. 이시언에게 부산은 고향이자 기회의 도시다. 방송 데뷔작 '친구'가 부산을 배경으로 했고, 그의 이름을 알린 '응답하라 1997' 역시 부산의 고교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아무래도 사투리와 그 시대에 딱 맞는 나이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서울이 배경이었다면 물망에 오를 수 있는 배우들의 폭도 훨씬 넓어졌겠죠. 오디션 때 1997년을 재현하기 위해 몇 가지 소품을 준비하기도 했어요. 힙합바지와 후드티를 입었고 당시 유행한 휴대폰 기종인 모토로라 '스타택'을 들고 갔죠."
'친구'로 TV에 데뷔하기 전 서울 대학로 연극무대에 섰다. 연극이 좋았고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돈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30세'를 마지노선으로 잡고 이후에도 연기로 성공하지 못하면 영영 그만두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갈 작정이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응답하라 1997'의 배우 이시언이 7일 서울 충무로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cdj@newsis.com 2012-09-07
"대학로 연극배우들은 아무리 유명한 배우들도 먹고 살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걸출한 작품의 주연을 맡은 재능있는 배우들도 금전적으로 힘들거든요. 조재현 선배님의 '연극열전'이 이런 열악한 공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고마운 프로그램이죠. 공연이 많이 알려지고 관객들이 많아져서 연극배우들이 밥은 먹을 수 있게, 회식 때 한꺼번에 회 두 점을 먹는다고 혼나는 일은 없게 됐으면 해요."
이시언은 이번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짝이 없어 서운하다. "'방성재'까지 러브 라인이 생기면 작품이 너무 복잡해지잖아요"라면서도 섭섭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다음 작품에서 '로맨스'를 원하는 이유다.
"로맨스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순박한 사랑을 꿈꾸고 싶어요. 재벌가 자제들의 사랑이 아닌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이야기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처럼요."【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