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는 검시에 검사, 경찰관, 의사, 판사의 네 직종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본연의 직무가 있고 검시는 부수적인 셈이다. 우리나라 검시의 맹점은 국민의 죽음만을 전담해서 보살피는 외국의 검시관이나 ME(Medical Examiner)와 같은 직종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SBS TV 드라마 ‘싸인’이 인기를 끌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법의학자들은 시체 스스로 죽음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보낸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진실을 파헤치려고 열과 성을 다하는 탤런트 박신양(44)의 모습을 보고 법의관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지원한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고 국내 법의학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법의학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평생을 법의학자로 살아온 문국진(87) 고려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다. 문 교수의 경험과 외국의 사례를 보며 국내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짚고 법의학의 발전방향을 제시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사후 인권을 다루는 검시제도에 있어서는 후진국이다. 묻지마 연쇄살인, 성범죄, 보험을 노리는 각종 범죄 등으로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사후관리’를 보호하는 법의학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검시제도가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돼 허술한 과거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후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사후인권의 보호는 선진국의 잣대이기도 하다. 법의학에 대한 인식이 전환된 후 제도의 개선, 전문 법의학자의 양성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마 전 한 남성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애인이 산낙지를 먹고 죽은 것처럼 위장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질식사로 묻힐 뻔 했지만 검시 결과 질식사가 아님이 판명됐다. 이처럼 검시를 통해 억울한 죽음을 해결할 수 있다. 예전에는 복지 국가의 개념이 국민이 살아있는 동안의 인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선진국일수록 사후 침해된 권리를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