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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화양구곡 '옥조빙호' '만동묘정비' 탁본 발굴
[종합]화양구곡 '옥조빙호' '만동묘정비' 탁본 발굴
  • 나기자
  • 승인 2012.08.23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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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중원대학교 이상주 교수는 괴산군 청천면 화양구곡 암벽에 붙여져 있다 없어진(왼쪽 사진 네모 안) 명나라 만력황제 신종의 글씨인 옥조빙호 탁본(오른쪽 사진)을 발견했다. 이 교수는 30일 중원대에서 열리는 괴산향토사연구회의 학술발표회에서 이를 발표한다. 【괴산=뉴시스】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구곡 암벽에 새겨 넣었다가 없어진 명나라 만력황제 신종의 글씨인 '옥조빙호(玉藻氷壺)'가 100년만에 탁본으로 발굴됐다.

또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훼손한 '만동묘정비(萬東廟庭碑)'의 전면 탁본도 함께 발굴돼 향토사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 탁본은 30일 오후 2시 중원대 예관에서 열리는 '괴향문화' 20집 발간 학술발표회에서 발굴자인 중원대 이상주 교수가 '일제강점기 옥조빙호·만동묘비 탁본에 관한 고찰'이란 주제로 발표한다.

화양구곡 5곡 첨성대 아래 암벽에는 명나라 숭정황제 의종의 친필휘호인 '비례부동(非禮不動)'이 음각돼 있고 그 옆에는 직사각형의 빈 공간이 남아 있어 궁금증을 낳았다.

일부에서는 이 빈 공간에 '옥조빙호'가 암각된 직육면체의 돌이 끼워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이번에 탁본으로 발굴됐다.

이 교수가 찾아낸 '옥조빙호' 탁본은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에 거주했던 고 우인규(1896~1967) 선생이 1914년 화양구곡에 가서 암각문자 중에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과 관련한 암각자를 탁본한 것 중의 하나다.

그는 괴산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화양동기(華陽洞記)를 지은 유학자였다.

'옥조빙호'의 '옥조'는 임금의 면류관에 달았던 옥이고, '빙호'는 얼음을 넣는 항아리를 의미한다.

이 교수는 "'옥조빙호' 실물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이번에 발굴한 탁본으로 빈 공간의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만동묘정비 탁본은 일본인이 앞면을 모두 쪼아 내고 뒷면도 3분의 1을 쪼아 버리기 전에 작업한 것이어서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동묘정비는 조선 영조 23년(1747)에 이재가 글을 지어 세웠고 순조 14년(1814)에 다시 세웠다.

일제가 1937년 비문을 알아볼 수 없게 쪼아버렸고 1942년에는 건물 철거와 함께 묘정비를 땅에 묻어버린 것을 1983년 괴산군에서 묘정비를 찾아 다시 세웠다.

현재 충북도기념물 25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만동묘는 우암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권상하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기 위해 숙종 29년(1703)에 세운 사당이다. 【괴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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