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써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후 충격 속에 청와대를 떠났던 박 후보가 오는 12월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꺾고 청와대에 재입성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각종 선거에서 유난히 강한 면모를 자랑하며 얻게 된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에 걸맞은 활약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총선의 여왕이 되기까지
실제로 박 후보가 여러 차례 총선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눈부셨다.
1997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도우며 정계에 입문한 박 후보는 이듬해인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15~19대까지 내리 5선을 하며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박 후보는 개인적으로 당선된 것뿐만 아니라 당 전체를 이끌다시피 했다.
수백억원대 기업 비자금을 대선자금으로 받아챙긴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한나라당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2004년 3월, 박 후보는 한나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뽑혔다.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는 우려가 높았지만 박 후보는 과감하게 천막당사 카드를 꺼내들며 쇄신 의지를 천명했다.
박 후보는 먼지가 날리는 천막에서 지내며 차떼기당의 오명을 씻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한 달 뒤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의석을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탓에 한나라당이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올 때였음에도 한나라당은 예상을 뛰어넘어 121석을 얻었다. 박 후보가 붕괴 일보 직전의 한나라당을 구하고 스스로 '선거의 여왕'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18대 총선에서도 박 후보는 여왕다운 면모를 자랑했다.
2008년 총선 직전 친이계의 공천독식으로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낙천하자 박 후보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한마디로 친박계 14명을 당선시켰다. 17대 총선이 선거의 여왕을 탄생시킨 선거였다면 18대 총선은 여왕의 능력을 입증한 선거였다.
지난 4월 치러진 19대 총선은 선거의 여왕이 청와대로 입성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전초전이었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이명박 대통령 측근 비리와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 등으로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지고 당이 위기에 빠지자 박 후보가 17대 총선 당시처럼 구원투수로 나섰다.
박 후보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키고 스스로 위원장직을 수행하며 분위기 쇄신에 앞장섰다.
대세가 야당 쪽으로 기울었다는 세간의 평가 속에 공천 신청자가 미달돼 신청기간을 연장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박 후보는 전국을 누비며 세몰이에 나섰다.
박 후보는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손 한 번만 흔들어도 1000표가 움직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무기 삼아 보수층을 결집시켰다.
결국 새누리당은 박 후보의 화려한 개인기 덕에 예상 밖의 과반의석을 달성했고 이후 박 후보는 당내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최고 권력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총선의 여왕, 대선 활약은 '글쎄'
그러나 박 후보는 대선에서만은 선거의 여왕으로서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선두주자였던 이회창 후보에게 국민경선제 도입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하고 미래연합을 창당해 도전했지만 결국 중도 하차했다.
2007년 17대 대선 때는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 참가해 선거인단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겼지만 전국적 여론조사 환산 투표에서 져 이명박 후보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내줬다.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자 일각에서는 박 후보가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약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사실상 '박근혜 대 야당' 대결구도로 분석되는 지난 19대 총선 결과를 분석하면 박 후보의 약점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대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서울에서 새누리당은 204만8743표를 얻어 민주통합당이 얻은 209만6045표보다 4만7302표를 적게 얻었다.
마찬가지로 최대의 표밭인 수도권 전체에서도 새누리당은 479만8433표를 얻은 반면 민주당이 469만8358표, 통합진보당이 39만7704표를 얻었다. 야권연대를 한 양당의 표를 합하면 새누리당보다 29만7629표가 더 나온 셈이다.
물론 새누리당이 대전과 충·남북에서 민주당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승부처인 서울과 수도권의 득표수를 감안하면 대선 승리를 확신하기에는 아직 박 후보의 브랜드 파워가 충분치 않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이외에도 박 후보가 넘어야할 장애물은 상당수 존재한다.
먼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던 정수장학회나 영남대, 부산일보 문제, 박지만-서향희 부부 삼화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 등이 향후 후보 검증 과정에서 부각될 수 있다. 5·16쿠데타 및 유신 옹호 발언도 중도 성향의 지지자들의 이탈을 부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고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역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뇌리에 잠재하고 있는 유신체제에 대한 반감을 환기시킬 수 있다.
게다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경쟁후보들이 요구한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한사코 거부한 점도 박 후보의 불통(不通)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평이다.
원칙을 지키는 후보라는 인상을 남기려했다지만 결과적으로 이재오와 정몽준 두 후보의 불참으로 경선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고 '새누리당은 곧 박근혜의 사당(私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까지 강화시키고 말았다.
이처럼 악재가 산재해있긴 하지만 박 후보가 여야를 통틀어 가장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는 후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올 연말 총선의 여왕이 대선의 여왕으로 한단계 올라설 수 있을지에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양=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