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근 박사의 '애견 이야기' <128>
샤페이가 마치 사람처럼 거울을 본다. 주름이 많은 샤페이, 퍼그 등은 동물병원에서 보톡스 주사를 맞는 귀한 '고객'이다.
세월의 흔적인 주름살을 제거하는 등 각종 미용성형에 널리 쓰이고 있는 보톡스. 2010년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보톡스를 만성 편두통 치료제로 승인하면서 보톡스는 미용 분야에 국한돼 있던 영역을 한 단계 넓혔다.
그런데 보톡스의 진출 분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동물의학계다. 개들이 한 방에 수십만원짜리 보톡스 주사를 맞고 있다. 2004년 브라질에서 주름살 개선 주사를 맞은 개가 여러 애견대회를 제패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해외토픽에 등장할 정도로 기이한 현상이었지만,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현실이 됐다. 주인의 품에 안겨 동물병원을 찾은 개가 보톡스 주사를 맞는 진풍경이 우리 주변에서도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톡스를 맞기 위해 동물병원을 찾는 견종은 주로 샤페이, 퍼그, 시추 등이다. 이들은 다른 개들에 비해 주름이 많다. 보톡스의 주사용 목적은 주름 제거. '개판' 보톡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주름 제거다. 주름 때문에 털이 눈을 찌르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개의 눈 주위에 보톡스를 주사해 주름을 편다. 치료 목적이나 위생 개선을 위해 보톡스를 맞는 게 대부분이지만 일부 주인들은 미관상의 이유로 애견의 주름 제거를 요구하기도 한다.
개판 보톡스의 용도는 주름 제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콧구멍이 좁아 호흡이 곤란한 개, 무릎뼈 탈골 증상을 앓는 개도 보톡스를 맞고, 척추와 대퇴골에 통증을 앓는 개도 보톡스를 맞는다. 보톡스를 맞은 개는 수개월간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방광이나 전립선에 문제가 있는 개들에게도 활용 될 수 있다.
정기적으로 보톡스를 맞는 사람들처럼 주기적으로 보톡스를 맞는 개도 있다. 아파트나 주택 등 실내에서 개를 키우는 주인들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성대 수술을 하는 대신 보톡스를 택하기도 한다.
개에게 주사되는 보톡스는 사람에게 쓰는 보톡스와 동일하다. 개가 맞는 보톡스의 가격은 주사 한 방에 50만원 정도. 최근 성형 시장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사람이 맞는 보톡스 주사 가격이 10만원 정도까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럼에도 한 달이면 개의 보톡스 시술을 받으러 오는 견주가 10여명에 이른다.
개판 보톡스는 일부 동물병원에서만 시술하고 있다. 국내 동물의학계에서는 개에게 보톡스를 주사하는 것에 대한 연구가 미미한 편이다. 필자는 아산병원 통증클리닉과 정형외과를 찾아 각종 수술을 참관하며 동물에게 응용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최신 기법인 보톡스 사용이 점차 확산하면 동물의료계의 블루오션이 되리라고 전망한다.
외국에서는 개에게 보톡스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포털사이트 토론방에서는 "치료에 효과가 있다면 보톡스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과 "인간처럼 애견 미용성형이 성행할 우려가 있으므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