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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꼼수는 가라, 정직의 미덕 '번지점프를 하다'
[초점]꼼수는 가라, 정직의 미덕 '번지점프를 하다'
  • 나기자
  • 승인 2012.08.13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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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42)과 이은주(1980~2005)가 주연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0)가 뮤지컬로 옮겨지자 관심은 2가지로 집중됐다.

영화로 이미 익숙한 장면들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재현했는지, 시간과 공간이 한정된 무대 위에서 시공을 뛰어 넘는 내용을 어떻게 구현했는지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를 정직하게 돌파한다. 원작 영화의 미덕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뮤지컬만의 미학을 살려내는 묘를 발휘했다.

유명한 장면들을 굳이 피하지 않는다. 자신의 우산 속으로 당돌하게 뛰어든 여자 '태희'에게 첫눈에 반한 '인우'가 긴장하면 딸꾹질을 하거나 태희의 풀린 신발 끈을 묶어준 뒤 물건을 들 때 새끼손가락이 올라가는 마법을 걸었다고 말하는 인우의 대사 등이 영화와 같다.

인우와 태희가 사랑을 쌓아가고 이별하는 1983년, 가장이자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살고 있으나 아직 태희를 잊지 못하는 인우 앞에 그녀의 흔적을 간직한 '현빈'이 나타나 혼란스러워하는 2001년을 오가는 시공간은 무대 장치로 풀어낸다.

다양한 크기의 가림막과 조명의 명암을 이용, 무대의 양 공간을 활용하면서 영화에서 화면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밀어내는 기법인 와이프를 무대 위에서 구사한다. 또 1983년과 2001년 태희와 현빈이 각각 인우를 따라가는 장면을 한 무대 위에 병치, 영화가 누리지 못하는 판타지적 효과도 과시한다. 가림막을 조이는 등 영화의 클로즈업도 척척 해낸다.

또 하나의 미덕은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당시의 향수를 자극하는 정서다. 전구가 나가 창문 밖으로 어슴푸레 빛이 들어오는 여관방에서 어색하게 사랑을 나누는 커플, 기차를 타고 MT를 가는 대학생 등은 관객들의 머릿속 당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마이 스케어리 걸'로 국내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은 작곡가 윌 애런슨(31)과 작사가 박천휴(29)의 '그게 나의 전부란 걸' '그대인가요' '혹시, 들은 적 있니' 등 감미로운 뮤지컬 넘버는 귓가를 감돈다.

영화 상영 당시 논란이 됐던 동성애 관련 부분은 부각되지 않는다. 태희를 향한 인우의 애절한 마음은 성(性)이 바뀌어도 절절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눈을 호강시키는 화려한 라이선스 뮤지컬 속에서 담백함이 인상적인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2007년 '스위니 토드' 라이선스 공연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영국의 연출가 에이드리언 오스먼드가 한국적인 정서를 잘 풀어냈다. 사랑은 만국 공통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인우를 맡은 뮤지컬배우 강필석(34)은 평소 감성적인 자신의 캐릭터를 인우에 그대로 녹여낸다. 뮤지컬 '왕세자실종사건' '닥터지바고'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전미도(30)는 당차고 밝은 모습으로 이은주의 신비스로운 태희와는 다른 매력을 풍긴다.

'지킬 앤 하이드' '아이다' 등에서 주로 마초 역을 맡은 김우형(31)이 강필석과 인우를 번갈아 연기한다. 뮤지컬 '풍월주'로 주목받은 최유하(31)가 전미도와 함께 태희 역으로 더블캐스팅됐다.

2008년 10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번지점프를 하다'는 2009년 전국문예회관연합회 주관 창작팩토리 사업에서 시범공연을 통해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2010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조명디자이너 백시원, 음향디자이너 강국현 등 '스위니 토드'의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9월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공연한다. 6만~8만원. 뮤지컬해븐 02-744-4033

정직함의 미덕 ★★★★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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