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기 종목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은 2012런던올림픽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선전을 했다. 한 두 종목에서 깜짝 활약을 보인 것이 아니다. 구기 종목 전반에 걸쳐 모두 좋은 성적을 일궈냈다.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 구기 종목은 런던에서 빛났다. 시차(8시간)에 따른 방송 중계로 국민들은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지만 억울하지는 않았다. 구기 종목 덕분에 마음만은 행복했다.
▲사상 첫 올림픽 메달, 축구 역사 새로 쓴 '홍명보호'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대표팀은 올림픽 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48런던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후 64년 만에 거둔 쾌거다.
홍명보호에 승선한 '최종 18인'의 면면은 화려했다. 역대 최고 전력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 획득에 대해선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그동안 수 차례 고배를 마셔왔기 때문이다.
3년 간 한솥밥을 먹어온 '홍명보와 아이들'은 강했다. 조별예선에서 2위(1승2무)를 차지하며 역대 3번째(1948런던·2004아테네·2012런던올림픽) 8강 진출을 일궈냈다.
8강에서 개최국 영국과 만났다. 대부분 한국의 패배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승부차기(5-4)까 지 가는 접전 끝에 영국을 눌렀다.
준결승에서 세계최강 브라질을 만나 0-3으로 패했지만 메달 획득을 위한 기회는 남아있었다. '숙적' 일본과의 3·4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1일 열린 3·4위전은 결승전보다 흥미로운 대결로 평가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은 박주영(아스날)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연속골을 터뜨리며 일본을 2-0으로 무너뜨렸다. '한일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꿈에 그리던 올림픽 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홍 감독은 냉철한 카리스마와 소신있는 결단력으로 한국 축구의 '황금시대'를 완성시켰다.
병역 기피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던 박주영을 비난까지 감수해가며 대표팀에 승선시켰다. 박주영은 3·4위전에서 그림 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그간의 믿음에 보답했다. 홍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박주영, 기성용(셀틱), 김보경(카디프시티), 남태희(레퀴야), 지동원(선더랜드) 등은 병역 면제 혜택을 통해 더 큰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들의 경험은 앞으로 한국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어갈 밑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축구는 인기에 비해 국제무대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만큼 올림픽 메달에 대한 국민적인 염원이 컸다. 색깔이 '금빛'은 아니었지만 2012년 대표팀이 목에 건 동메달은 국민들에게 금메달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부상 투혼 속 값진 4위 女배구
한국은 1976몬트리올올릭픽에서 구기 종목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동안 주춤했던 여자배구는 이번 런던올림픽을 통해 한국 배구의 '중흥기'를 맞겠다는 각오였다.
'Again 1976'을 외치며 런던으로 향한 여자배구대표팀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메달보다 값진 4위를 기록했다.
선수들의 부상이 가장 아쉬웠다.
에이스 김연경(페네르바체)은 수술을 받았던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았고 황연주(현대건설)와 정대영(GS칼텍스)은 각각 오른 새끼손가락과 발목에 부상을 당했다. 김사니(흥국생명)는 어깨가 문제였다. 크코 작은 부상까지 합치면 대표팀은 '부상병동'과 같았다.
게다가 런던행을 눈 앞에 두고 김연경의 이적 관련 문제가 터지며 대표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악재가 더 많았다. 남은 것은 올림픽을 향한 선수들의 '열정' 뿐이었다.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한국은 '죽음의 조'로 불리던 B조에서 2승3패를 거두며 조 3위로 당당히 8강에 진출했다. 특히 2003년 이후 11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던 브라질을 3-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8강에서 이탈리아(3-1)까지 꺾은 한국은 준결승에서 세계최강 미국에 0-3으로 완패했다. 전력을 다했지만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일본과의 3·4위결정전에서 마지막 투혼을 발휘했지만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서브리시브에서 극심한 난조를 보이며 0-3으로 져 동메달을 내주고 말았다.
한국은 세계랭킹 15위에 불과한 전력으로 강호들을 무너뜨리며 당당히 4위에 올랐다. 한국이 완승을 거둔 브라질은 미국을 3-1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월드클레스 스타'도 얻었다. 김연경은 이번 대회에서 총 207점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2위인 미국의 주포 데스티니 후커(161득점)를 무려 46점차로 따돌렸다.
'몬트리올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일본전에서 패한 한국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런던올림픽 4강은 실패가 아니다. 이 역시 36년 만에 거둔 최고 성적이자 힘들게 일궈낸 값진 성공이다.
▲'우생순' 감동 재현한 女핸드볼
여자 핸드볼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일궈왔다. 지금까지 총 6개의 메달(금2·은3·동1)을 따내며 한국 구기 종목의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핸드볼 대표팀은 런던올림픽을 통해 2004아테네올림픽 이후 3회 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을 노렸다. 출발은 좋았다.
한국은 조별예선에서 3승1무1패를 거두며 조2위를 차지했다. 특히 아테네올림픽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내줘야만 했던 덴마크에 25-24, 짜릿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분위기를 탄 한국은 8강에서 러시아를 24-23으로 누르며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올림픽 경기에서 비교적 노장으로 구성된 한국대표팀은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조별예선에서 무승부를 거뒀던 노르웨이에 25-31 완패를 당했고 연이어 치러진 3·4위전에서는 스페인에 29-31로 졌다.
3·4위전에서는 마지막에 터진 골이 정규시간 종료 이후 나왔다는 판정으로 인해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여자 핸드볼의 3회 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은 좌절됐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투혼을 불태웠다. 여자 핸드볼은 2012년 또 한 번의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국민들의 가슴 속에 새겨 넣었다.
▲30대 노장들의 투혼, 남자탁구
'올드 보이'들의 마지막 구슬땀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오상은(35), 주세혁(32), 유승민(30)이 런던올림픽 남자 탁구 단체전에서 소중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이징올림픽(동메달)에 이어 2회 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탁구에서 계속 되고 있는 중국의 독주가 무섭다. 런던올림픽에서도 중국은 남녀 개인과 단체전 등 금메달 4개를 싹쓸이 했다. 개인전 같은 경우에는 은메달도 모두 중국이 차지했다.
중국을 포함한 세계의 강호들과 맞서기 위해 한국은 30대 노장들이 나섰다. 어린 후배들이 나서주는 편이 보기에도 좋았겠지만 메달을 위한 최고의 대안은 이들 뿐이었다.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을 필두로 긴 여정에 들어간 대표팀은 그야말로 투혼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했다.
8강에서 포르투갈을 만나 치열한 접전 끝에 3-2 승리를 거뒀고 준결승에서는 홍콩을 재물삼아 결승행을 확정지었다. 중국과 맞붙은 결승전에서 실력차를 실감하며 0-3으로 완패했다.
비록 금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노장들의 마지막 올림픽 도전은 아름다웠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30대' 남자대표팀의 투혼은 은메달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