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여년간의 내전으로 곳곳에 수많은 지뢰가 매설돼 있는 캄보디아. 어느 곳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 지뢰를 묻은 사람조차 모를 정도로 그야말로 '지뢰밭'이다.
오랜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가난한 농민들은 '지뢰가 묻혀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생계를 위해 숲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처에 깔린 지뢰는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지금도 위협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평화 운동가이자 지뢰제거 전문가인 '아키 라(AKi Ra·39)'는 '만해대상' 평화부문에서 수상자로 선정됐다.
'만해대상'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명·평화·겨레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지난 1997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제정했다. 평화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한 영웅들과 함께 '아키 라'라는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 10년여동안 20여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캄보디아의 울창한 숲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단 한건의 폭발 사고 없이 5만여개가 넘는 지뢰를 제거했다.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두렵거나 떨리지 않습니다."
아키 라는 풀숲을 헤치고 애써 찾지 않으면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지뢰도 단숨에 찾아낼 정도로 베테랑이 됐다. 그는 2010년 CNN이 선정한 '올해의 영웅 10인' 중 한명으로 선정될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아키 라는 크메르 루주 정권(Khmer Rouge)하에서 지옥을 경험했다. 이 정권은 의사나 교사, 학자, 예술가 등을 '공공의 적'으로 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여겨 수많은 지식인과 민간인을 학살했다. 교사였던 아키 라의 아버지도 처참하게 살육 당했고 어머니마저 잃었다.
고아가 된 아키 라는 소년병으로 징집됐다. 그는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한 채 극도로 폐쇄된 섬에 살기 위해 총과 지뢰를 쥐고 훈련을 받아야 했다.
소년병들은 지뢰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캄보디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지뢰를 땅에 묻는 일을 했다.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지만 어린 아키 라에게는 그저 놀이에 불과했다고 한다.
아키 라는 "너무 어려서 총을 쏘고 지뢰를 매설하는 일이 일종의 놀이처럼 느껴졌다"며 "반군들은 소년병들을 강제로 끌고 와 전쟁터로 내몰고 사람을 향해 총을 쏘고 지뢰를 매설하는 훈련을 시켰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달에 무려 4000~5000개가 넘는 지뢰를 심었다고 한다. 또 베트남 군대에 끌려가 전장에 내몰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키 라는 자신의 생일과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
아키 라는 1990년대 캄보디아에 UN평화유지군이 파견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그는 UN군과 함께 지뢰제거 작업에 나섰다. 소년병 시절 배운 지뢰 설치 기술은 지뢰를 제거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UN군이 철수했는데도 지뢰제거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의 아내역시 지뢰 제거작업을 함께하며 힘을 보탰다.
그는 "4년전 아내가 세명의 자녀를 남겨두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뢰가 장난감인 줄 알고 가지고 놀다 폭발하면서 다리를 잃고 의족을 찬 캄보디아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지금도 캄보디아 아이들은 지뢰 때문에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뢰 폭발 사고로 다리를 잃거나 다친 20여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키웠고 현재 후원을 받아 38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회수한 지뢰를 모아 '지뢰박물관'을 설립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아리 카는 "평화는 서로 미워하지 않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지뢰를 제거와 교육문제에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통해 캄보디아의 평화를 정착 시켜달라"고 말했다.
이어 "캄보디아에 돌아가서 지뢰가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지뢰 제거작업을 계속 할 것"이라며 "더 이상 지뢰에 희생되는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캄보디아 당국은 아직도 400~600만개의 지뢰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인구 290명당 1명이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다. 이는 전세계 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자 국가적 아픔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