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한 환자의 시신을 유기해 충격을 준 강남 산부의과 의사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 외에 13가지 약물을 혼합투여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8일 의사 김모(45)씨가 미다졸람 5㎖ 외에 마취제인 나로핀 7.5㎎, 리도카인, 근육이완제 베카론 4㎎ 등 약물 13가지를 사망한 이모(30·여)씨에게 투여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2시40분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산부인과 입원실에서 이씨에게 약물를 투약하고 사망하자 한강잠원지구 주차장에 이씨의 차와 시신을 버리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의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담당 부검의는 "이씨의 시신에서 뇌, 장기 등 신체기관에서는 직접적인 사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현재 혈액, 장기 등 채취 약물성분 및 농도를 검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미다졸람 등 약품을 불법적으로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미다졸람은 김씨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3층 간호실에 가서 자신이 피곤해서 투약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져나왔다"며 "나머지 나로핀, 베카론, 리도카인 등 3종은 수술이 끝나고 수술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몰래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A병원 마취과장 박모(41)씨 등 전문의 3명에게 김씨가 투약한 약물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나로핀은 환자 수술시 국소마취제로 쓰이며 심장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독성이 있어 심장이 정지될 수 있는 부작용을 지닌 약물이다
나로핀은 혈관투약이 금지돼 있지만 김씨는 이씨의 혈관을 통해 혼합 약물을 투약했다고 진술했다.
베카론도 수술시 전신마취를 위해 사용하는 근육이완제로 이를 투여하면 자발적인 호흡이 정지돼 외부적인 호흡이 가능하도록 호흡대체기를 사용해 호흡을 유지시켜 줘야 한다.
전문의들은 "특히 나로핀, 베카론은 위험한 약물이고 투약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혼합해 사용하면 사람이 사망하므로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한의사협회에 13가지 혼합 약물의 투약과 이씨와의 사망에 관한 인과관계 등에 대해 감정을 의뢰했다.
또 내연관계로 알려졌던 김씨와 이씨는 이날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4일 국과수로부터 이씨의 질액에서 김씨의 DNA(정액)가 검출됐다는 감정 내용을 회신받았다"며 "김씨 진술에 의하면 약물투약 중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들의 휴대전화 메시지 등을 복원해 둘 간의 관계를 조사해 왔다.
김씨와 이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8시54분께 "언제 우유주사(영양제) 맞을까요", "오늘요" 등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았고 이씨는 약물을 투약받기 전 휴대전화를 이용해 베카론 등 약물을 검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경찰은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검토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검사와 범죄 행동분석(프로파일링)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거짓말 탐지검사 결과 판단불능이란 통보를 받았다"며 "1차 범죄행동분석 결과 범행동기 등 특별한 행동 분석 결과가 없고 현재 2차 면담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의 살인에 고의가 있었는지를 집중 추궁했으나 김씨는 점적주사(수액에 링거줄을 통해 방울로 투약되는 방법)로 투약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며 살인의 고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경찰은 김씨를 사체유기, 업무상과실치사,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로 9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또 김씨가 근무했던 병원과 간호사, 약사 등을 조사해 관련법에 따라 처벌할 계획이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