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닥파닥' 이대희, 그에게서 한국애니 미래 읽는다
'파닥파닥' 이대희, 그에게서 한국애니 미래 읽는다
  • 나기자
  • 승인 2012.08.06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이맘때 닭을 먹기 싫었다면, 이번 여름에는 생선회 먹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워질 듯하다. 200만 관객을 돌파한 만화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감독 오성윤)이 그랬듯, 만화 영화 한 편이 작지만 강한 메시지를 던져놓았기 때문이다.

한여름, 가뜩이나 힘든 횟집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이 '파닥파닥'의 이대희(35) 감독이다.

'바다 출신 고등어의 수족관 탈출기'라는 설명을 듣지 않고 제목만 봐도 즉각 연상되듯 '파닥파닥'은 싱싱한 생선을 주인공으로 한다.

세종대 애니메이션과를 나온 이 감독은 서울 홍대앞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꼬마대장 망치', '신 암행어사', TV시리즈 '양의 전설', '카드 왕 믹스마스터' 등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출퇴근 길에 지나치는 횟집 수족관의 활어들을 보고 그들의 사연을 만화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횟집에 취업했다.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사를 벌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이 감독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 생계 문제에 부딪히게 되더군요. 모은 돈이 있었지만 제작비로 써야 하니 한 푼도 건드릴 수 없었죠"라면서 "그래서 돈도 벌고 자료 조사도 하겠다는 생각에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닥파닥'에는 횟집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다룰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장난꾸러기 어린이가 주인공인 고등어 '파닥파닥'을 뜰채로 건져내 '니모'(흰동가리)가 유유자적 노닐고 있는 횟집 안 관상용 해수어 수조에 슬쩍 집어넣는 것, 수족관에 있는 우럭이나 광어들이 눈이 멀어 있는 모습, 고등어 놀래미 넙치 줄돔 농어 도미 등 주요 등장생선들의 성격과 습성 등이 그것들이다.

이 감독은 "횟집에서 2년 가량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 관찰도 하고 횟집에서 일하는 분들과 인터뷰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라며 자신의 횟집 생활을 작품에 어떻게 녹여넣었는가를 상세히 소개했다.

장난꾸러기 소년은 횟집 단골손님의 아들에서 따왔다. 지나칠 정도로 장난이 심해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당시의 '분노'를 작품 속 얄미운 캐릭터로 형상화했다.

수족관에 가득 차 있는 눈 먼 물고기는 광어와 우럭들이다. 횟집에는 잘 나가는 생선들이 한 번에 많이 들어오는데 트럭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산소 주입기를 세게 틀면 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점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파닥파닥(김현지)이 수족관 안에서 잠시도 가만히 못 있고 왔다갔다 헤엄치며 바다를 갈구하는 것이나 수족관의 권력자 '올드넙치'(시영준)가 수족관 바닥에 딱 붙어 잘 움직이지 않다가 갑자기 '욱'하고 화를 내며 수족관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 등은 이 감독이 관찰한 것들을 캐릭터화했다. 또 '놀래미'(안영미)가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것은 어느 횟집 직원이 낚시를 갔다가 같은 놀래미를 여러 번 잡았다 놓아준 일화를 토대로 했다.

파닥파닥은 바다에서 잡혀온 고등어다. 우연한 기회에 양어장 출신 생선들로 가득한 횟집 수족관으로 들어오게 된다. 양어장 출신 생선들은 바다로 돌아가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는 것만이 목표인 패배자들이다. 이들의 유일한 행복은 죽어가는 생선이 먹잇감으로 수족관에 던져지는 일 뿐이다. 하지만 파닥파닥은 다르다. 바다로 돌아가겠다며 수족관 유리벽에 몸을 부딪치기도 하고, 벽 너머로 점프해 탈출도 시도한다. 배를 곯을지언정 죽은 고기는 먹기조차 거부한다. 처음에는 미친 짓으로 받아들이던 다른 생선들도 서서히 바다를 꿈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파닥파닥의 꿈이 현실의 벽에 짓눌리던 날 그의 영향을 받은 다른 생선이 탈출을 기도하게 된다. 할리우드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2003)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결말이다.

이 감독은 "물론 주변에서 그런 결말에 많이들 반대한 것도 사실이에요"라면서도 "저는 처음부터 주인공이 다른 주인공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물론 파닥파닥이 꿈을 이룬다면 좋겠지만 주인공이 그런 것을 꼭 성취해야 하는 것만이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주인공의 노력과 꿈이 나약하고 웅크러져 있던 주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도 또 다른 해피엔딩일 수 있으니까요"라고 강조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도 돋보인다. 수족관 너머 바다를 꿈꾸는 파닥파닥의 마음을 판타지로 그려낸 '악몽'(드로잉온 페이퍼, 픽셀레이션, 모션그래픽 애니메이션, CGI 애니메이션 기법), '아나고'(이호산)가 파닥파닥에게 물고기들에게 낼 퀴즈를 생각해보도록 설득하는 강렬한 분위기의 '생각해봐'(디지셀 기법), 파닥파닥과 올드넙치가 화해하는 상황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용서해요'(드로잉 온 페이퍼 기법) 등 3차례 등장한다. 음악감독은 인디밴드 '네스티요나'의 보컬리스트 요나(30)가 맡았다.

이 감독은 뮤지컬 시퀀스를 삽입하게 된 이유로 두 가지를 손꼽았다.

하나는 내용면이다. "스토리가 잡히고, 회쳐지고, 뜯어먹히고…. 극단적일 정도로 현실적이다 보니 삭막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 힘든 상황을 판타지로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옆에서 생선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현실과 음악이 흐르는 서정적 장면들의 대비가 아이러니를 만들면서 영화의 내러티브를 강하게 이끌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다른 하나는 표현면이다. "수족관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카메라 워크도 없다 보니 계속 보면 관객들도 답답해져서 몰입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관객들도 어느 정도 답답함을 느껴야 할 필요는 있었지만 도가 지나칠 수는 없었죠. 그래서 그런 답답함을 풀어주기 위해 뮤직비디오는 넓은 공간에서 생선들이 자유롭게 유영하도록 했죠. 컬러 역시 생선들이 갇혀 있는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미술감독에게 '수용소 느낌이 나게 해달라'고 주문한 것이어서 톤이 전반적으로 무채색에 가까울 정도로 어둡고 탁했습니다. 그 점 역시 컬러풀한 뮤지컬 시퀀스로 풀어주려고 했어요."

2007년 프로젝트가 시작돼 1년에 걸친 시나리오 작업과 4년이 넘는 제작기간 등 5년이 소요된 '파닥파닥'은 지난 5월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CGV 무비꼴라쥬'상을 받았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애니메이션 개봉 지원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CJ엔터테인먼트·인디스토리 배급으로 7월25일 CGV 다양성영화 전문 상영관 무비꼴라쥬관 등지에서 '12세 관람가'로 적지만 의미있게 개봉했다.

5일까지 687만 관객을 끌어모은 국산 범죄액션 블록버스터 '도둑들'(감독 최동훈)이나 552만 관객이 본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 '다크나이트 라이즈'(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물론 '새미의 어드벤처2', '아이스 에이지4: 대륙이동설' 등 할리우드 만화영화 대작들 틈에서 힘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포털사이트 등에 '자녀가 생선을 먹지 않으려 한다'는 어머니의 걱정 섞인 글이 올라올 정도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다.

이 감독은 "현실상 흥행면에서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면서도 "이번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것이니 기대해주시고 성원해주세요"라고 청했다. 특히 "이번 작품을 하면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강한 것은 어떤 점인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만화영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선입관을 깨보고 싶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정성껏 만든다는 것도 있지만 노하우가 부족하면서 빚어지는 시행 착오 탓도 있거든요. 이제 우리 만화영화도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요?"라며 강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바다를 향한 파닥파닥의 몸부림은 수족관에 안주하던 생선들을 바다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 감독의 도전정신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물론 다른 만화영화인들에게도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보기를 제시했다.【서울=뉴시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주)퍼블릭웰
  • 사업자등록번호 : 616-81-58266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남광로 181, 302-104
  • 제호 : 채널제주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제주 아 01047
  • 등록일 : 2013-07-11
  • 창간일 : 2013-07-01
  • 발행인 : 박혜정
  • 편집인 : 강내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내윤
  • 대표전화 : 064-713-6991~2
  • 팩스 : 064-713-6993
  • 긴급전화 : 010-7578-7785
  • 채널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채널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channel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