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조차 숨어버린 그들, 시로 불러낸다”
제주의 땅과 사람, 언어의 깊이를 시로 담아온 시인 황금녀가 신작 시집 《눈물도 곱아불언마》을 펴냈다.
책 제목인 ‘눈물도 곱아불언마씀’은 표준어로 ‘눈물도 숨어버렸습니다’라는 뜻의 제주어로, 제주 4‧3의 상흔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의 삶을 아프고도 따뜻하게 비춘다.
이번 시집은 제주 사람들의 지난한 시간을 기록한 동시에, 그 삶에 바치는 진혼의 노래이자 희망의 언어다.
총 5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66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인은 제주도 토박이 말인 제주어를 바탕으로 고유한 리듬과 정서를 지닌 시들을 엮어냈다.
입말로 전해지던 제주어가 시의 언어로 탈바꿈하며 각 편마다 제주의 풍경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시는 때로는 서사시처럼 이어지고, 때로는 한 편의 구술기록처럼 독자의 마음에 깊은 파문을 남긴다.
특히 《눈물도 곱아불언마씀》은 제주 4‧3을 중심 테마로 삼는다. ‘세계에서 제일 긴 무덤’, ‘사삼 북세통에’, ‘사월 하늘 아래서’ 등의 시편에서 시인은 억압과 학살의 시간 속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고통을 애도하며, 여전히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유족들의 마음에 공명한다.
시인의 언어는 격정을 쏟아내기보다는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묵직한 역사적 진실을 불러낸다.
제2부 ‘보름 이왁’과 제3부 ‘으따 으싯이 봐졈수다양’에서는 제주어의 아름다움과 공동체의 일상을 포착한다. 제주어를 보존하고 알리려는 시인의 의지가 도드라지며, 고령의 시인이 지켜온 언어유산이 살아 있는 현재로 되살아난다. 또한 ‘선달래 고장’과 ‘나 이 땅에 왓당그네’ 부에서는 자연과 인생, 신앙,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서가 흘러나온다.
황금녀 시인은 1939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태어나 평생 제주어를 품고 살아온 토박이 시인이다. 1960년 MBC 창사기념 수기 공모를 통해 등단한 이후, 기독여성문예 대상, 창조문예 신인상, 종려나무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7년에는 한글날을 맞아 한글발전 유공자 표창과 자랑스러운 제주인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그간 《주님 뵈올 날 늴모리 동》, 《복에 겨워》, 《베롱한 싀상》, 《고른베기』》 등의 시집과 동시집을 펴낸 그는, 특히 제주어로 쓰인 시집 《둥근 달이 청멩케 넘어감서고》, 《열두밧디 고망 터진 항 삽서》 등을 통해 제주어 시문학의 독자적인 지평을 넓혀왔다. 이번 신작 역시 제주어를 현대시로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
황금녀 시인은 머리말에서 “고향의 바닷가에 앉아 그리운 님들을 떠올릴 때마다, 관대모살밧에 울음처럼 이는 물결을 본다”고 적었다. 그 잔잔한 물결처럼 시집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는 위로와 성찰을 건넨다.
시집 《눈물도 곱아불언마씀》은 고통과 망각의 시간을 지나, 제주어라는 언어로 되살아난 기억의 시편이다. 그것은 개인의 회고를 넘어, 한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난 인간다움에 대한 헌사다. 눈물도 숨었던 시간 속에서, 이제는 그 눈물이 언어로 다시 흐르고 있다.
한그루 刊 15,000원
■ 작품감상
세계에서 제일 긴 무덤 2
가을바람이 달려와 간지럼을 태우는지 허리가 휘도록 자지러지고
키작은 꽃들도 안달이 나서 잎들을 흔드는데
그 꽃들에게 답을 보낼 생각도 잊은 채
요즘 들려오는 소식에
무자기축년에 어웃허게 벌러진 내 가슴에선
슬픔이 자라고 칭원험이 자라
풀꽃 한 송이도 못 피운
그 긴 세월 농익어 짜고 짜진 눈물 차마 얼어
온몸이 오한징까지 일어 몇날 몇밤 이불깃을 당겼습니다
총 한 방이면 사람은 죽을 텐데
아름다운 조선의 나라에서 그렇게 심우쟁이 좋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을까
왜 골령골 산골짜기에선 그 많은 청춘들 트럭 태우기 전에
묶인 손에 발에 따발총을 쏘아 놓고 트럭에 집어넣고 그 사람들 우에다
가마니를 덮고 또 사람들을 밀어넣고 또 가마니를 덮고 밀어넣고
몇 겹을 싣고 가서 파놓은 구덩이 밀어넣어 쏘아대던 때
그때 제 아버님 그 많은 청춘들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 파헤쳐지는 세계에서 제일 긴 무덤
그때 봤던 증언자에 의하면 7천명 이상 8천명이나 되는 분들이
난동이라도 피울까 염려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증언
몇날 몇밤을 ‘오 하느님, 공의는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공의는? 공의는? 하며 한없이 우는데
너그러운 아버님 모습에선 결코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 하느님! 국가는 무엇이며,
국민들은 무엇입니까”하고 외치며 가셨을 거야!
그 알맹이 말만 내 가심에 꼭 품곡 악을 선으로 갚으라 하신
하늘님의 말씀 생각나서 나는 당차게 외쳤습니다
아버님 모두들 낙원에서 만나요
나는 아버님들 모시며 영원히 살게요
이 설움 목울대 안으로 솜지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