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06-04 14:26 (수)
“숨김이 곧 드러냄”…손광성 작가, 문학과 동양화의 경계를 허물다
“숨김이 곧 드러냄”…손광성 작가, 문학과 동양화의 경계를 허물다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5.04.28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일, 동백문학회 주최 “손광성 선생의 평생 작업이 응축된 깊이 있는 강의”
​​​​​​​제주문학관서 열린 ‘홍운탁월 기법’ 중심 특별 강연, “관객 호응 높아”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1935~) 작가의 특별 강연이 동백문학회(회장 김순신) 주최로 열렸다.
▲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1935~) 작가의 특별 강연이 동백문학회(회장 김순신) 주최로 열렸다. ⓒ채널제주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는 수필가이자 화가인 손광성(1935~) 선생의 특별 강연이 열렸다. ‘문학이 동양화 기법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의 이번 강연은 문학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 장르 간의 교차 가능성을 탐색해온 손 선생의 평생 작업이 응축된 깊이 있는 강의였다.

특히 그는 동양화의 기법이자 미학인 ‘홍운탁월(烘雲托月)’을 중심으로 문학적 표현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1935~) 작가의 특별 강연이 동백문학회(회장 김순신) 주최로 열렸다.
▲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1935~) 작가의 특별 강연이 동백문학회(회장 김순신) 주최로 열렸다. ⓒ채널제주

강연은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손 선생은 “문학은 장치의 총체”라는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의 말을 인용하며 독자의 감동은 내용 그 자체보다 그 내용을 구성하고 전달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는 문학의 기법적 실험과 장르 간 차용, 특히 시각예술에서 문학으로의 표현 기법 이입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강연의 핵심은 단연 ‘홍운탁월’ 기법에 대한 심도 깊은 해설이었다. ‘홍운탁월’은 ‘구름을 그슬려 달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표현 대상 자체를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대조적 상황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동양화의 전통적 기법이다.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1935~) 작가의 특별 강연이 동백문학회(회장 김순신) 주최로 열렸다.
▲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1935~) 작가의 특별 강연이 동백문학회(회장 김순신) 주최로 열렸다. ⓒ채널제주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오히려 달빛이 더 밝게 떠오르게 만드는 이 방식은 은유나 몽타주처럼 서양문학에 이미 유입된 표현 기법을 넘어서는 동양 고유의 간접성과 우회성의 철학을 내포한다.

“드러내고 싶으면 감추어라”는 말처럼, 손 선생은 이 간접성과 절제, 여운의 미학이 문학에서 어떠한 서사적 깊이와 정서적 밀도를 이룰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수필과 소설 작품을 통해 분석했다.

손광성 선생은 무성균의 수필 「앞자리」, 피천득의 수필 「보스턴 심포니」와 「인연」, 자신의 작품 「달팽이」,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의 「창백한 언덕 풍경」 등 여섯 편의 작품을 예시로 들어 이 기법이 문학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며 감동을 자아내는지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1935~) 작가의 특별 강연이 동백문학회(회장 김순신) 주최로 열렸다.
▲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1935~) 작가의 특별 강연이 동백문학회(회장 김순신) 주최로 열렸다. ⓒ채널제주

예를 들어 피천득의 「보스턴 심포니」에서는 중계방송이 끊긴 순간 ‘무지개가 떴다’는 생뚱맞은 문장이 삽입됨으로써 슬픔이라는 백색 정서가 일곱 빛깔로 굴절되며 감정을 증폭시키는 방식이 제시된다. 이는 명확함보다 모호함, 직진보다 우회가 더 큰 정서적 여운을 남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혔다.

김동리의 「등신불」에서는 만적의 소신공양과 화자의 ‘이기적’ 희생을 대비시키며 독자가 작품의 주제를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하는 구조를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도 더 큰 울림을 남기는 ‘홍운탁월’의 미학이 극대화되었다.

이번 강연은 동양화의 오래된 미학이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는지, 또 그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새로운 감각으로 작품을 읽고 감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문학과 미술,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손광성 선생이 제시한 ‘홍운탁월’의 문학적 가치와 가능성은 단순한 미학적 유희를 넘어 문학이 다시 정서적 깊이와 감성의 폭을 회복할 수 있는 단초가 되어주었다.

특히 문학비평의 도식화와 이론의 획일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과 감식안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이날의 강연은 많은 청중에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1935년 함경남도 홍원군 출생으로 흥남철수 때 월남한 손광성 선생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동국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수필가와 동양화가로 평생을 창작에 헌신해왔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반화재에서 여전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그의 삶 자체가 ‘문학이 동양화 기법을 만나는 장면’임을 이날 강연은 웅변하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주)퍼블릭웰
  • 사업자등록번호 : 616-81-58266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남광로 181, 302-104
  • 제호 : 채널제주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제주 아 01047
  • 등록일 : 2013-07-11
  • 창간일 : 2013-07-01
  • 발행인 : 박혜정
  • 편집인 : 강내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내윤
  • 대표전화 : 064-713-6991~2
  • 팩스 : 064-713-6993
  • 긴급전화 : 010-7578-7785
  • 채널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채널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channel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