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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억수 시인 시집 《피꽃 피우고》 출간
산억수 시인 시집 《피꽃 피우고》 출간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5.04.25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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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혼과 눈물로 다시 피운 詩의 꽃
​​​​​​​거친 바람 같지만 따뜻한 사람, 제주를 품은 시인 산억수
산억수 시인 시집 《피꽃 피우고》 표지
▲ 산억수 시인 시집 《피꽃 피우고》 표지 ⓒ채널제주

산억수 시인이 최근 두 번째 시집 《피꽃 피우고》를 출간하며 한국 시단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06편의 시를 통해 제주도의 역사적 비극과 자연의 숨결 그리고 인간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다.

《피꽃 피우고》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강렬한 상징을 담고 있다. 특히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다룬 시 <엇찍이>는 시집의 백미로 손꼽힌다. 포클레인에 의해 파헤쳐지는 무연고 무덤, 젖가슴으로 아이를 눌러 숨죽여야 했던 어미의 마음은 독자들의 가슴을 쥐어짠다.

“배고파 우는 제 새끼/ 젖가슴으로 눌러 죽인 젊은 어미는/ 미쳐 억새밭으로 사라져버렸고”라는 시구는 단순한 묘사가 아닌 시대의 아픔을 육화한 시인의 비문(悲文)이다. 반복되는 제주 방언 “엇쩌엇쩌 엇쩌엇찌……”는 절망 속의 울음이고 저항 없는 몸부림이다.

시인 이제인은 “그의 삶 자체가 시였고, 울분 가득한 역사였으며 눈물이었다”며 “제주의 거친 바람을 마주한 듯한 그의 시편들 속에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깊은 공감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평했다.

시인은 그 누구보다 제주도를 사랑했고 동시에 제주가 겪어야 했던 슬픔과 한(恨)을 시로 부활시키고자 했다.

“이웃 지구에서 불씨 얻었으니, 어서 집으로 가자”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시 <심부름>은 시인의 존재론적 성찰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시인은 생명의 유래를 “이웃 지구”라는 신비한 표현으로 풀어내며 인생의 여정을 ‘저녁을 짓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비유한다. 이는 단순한 일상의 묘사를 넘어서서 생명의 근원을 향한 초월적 우주관과 창조주에 대한 신뢰를 드러낸다.

“어서 집으로 가자”는 마지막 구절은 삶과 죽음, 존재와 귀환의 의미를 시적으로 집약한 문장이며 그의 시 전반에 흐르는 태도 -겸허하고 따뜻한 시선— 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시집 곳곳에는 도시의 소음이 아닌 흙냄새 나는 삶의 풍경이 펼쳐진다. 「어린 소찍이 날다」에서는 눈 덮인 새벽, 굴묵방 고래에서 돼지 먹이를 훔쳐 먹는 배고픈 새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배고픔을 외면할 수 없는 유년의 기억이자 생존을 위한 치열함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생명의 아름다움이다.

또한 <유기농>에서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환경과 생명의 조화를 시적으로 표현했다. 시인은 잡초를 뽑지 않고 벌레를 쫓기 위한 농약도 쓰지 않는다. 그는 고구마 수확보다 풀들과의 ‘함께 사는 삶’을 택했다. 이는 생명에 대한 예의이자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기농 한다고 풀 뽑지 않았다/ 그들도 살아야 하기에” —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함께’에 머문다. 인간뿐 아니라 벌레, 잡초, 새, 죽은 자의 넋까지도 시인의 시 속에서는 하나의 생명으로 자리매김한다.

산억수 시인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제주의 서귀포를 고향으로 삼았다. 2011년 《현대수필》로 등단한 뒤 2015년 첫 시집 《바람공쟁이》를 통해 본격적인 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23년 《동행문학》으로 다시 시단에 복귀하며 문학세계상 대상을 수상하는 등 그만의 독자적인 시 세계를 공고히 다져왔다.

시인의 말처럼 “서둘지 말고 쉬엄쉬엄/ 세상 따스한 인연들만/ 가슴에 묻고” 살아가겠다는 그의 삶의 태도는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오히려 더 귀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지금도 제주 바람 속에서 사라져가는 풀꽃과 오래된 무덤, 배고픈 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산억수의 시집 《피꽃 피우고》는 단순한 개인의 시 모음이 아니다. 그것은 ‘제주’라는 섬의 역사, 생명, 자연, 슬픔, 화해, 희망까지도 아우르는 시적 기록이며 시인이 일생을 걸고 빚은 생명의 노래다.

시집 한 편 한 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안에 깃든 제주의 풍경과 사람, 그리고 오래된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따뜻하다. 시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서두르지 말라고. 쉬엄쉬엄 가자고. 그 길 끝에서 ‘집’으로 돌아갈 날이 반드시 올 것이기에.

《피꽃 피우고》 | 산억수 지음 | 동행 刊 | 15,000원
 

[작품감상]
 

엇찍이
-4.3 이야기 6
 

늙은 곰솔에
밤마다 찾아오는

서귀포 쌀오름 앞 헬스케어 만든다고
임자 없는 무덤들
포크레인
안 듯 모른 듯 모른 듯 파헤쳐 버렸다

지난 4.3 때
토벌대 무서워 산사람에 오금 저려
마을 사람들 대왓에 숨었다

배고파 우는 새끼
젖가슴으로 눌러 죽인 철모른 어미는
미쳐 억새왓으로 사라져버렸고

솔왓 아기무덤 사라지자
밤 깊도록

엇쩌엇쩌 엇쩌엇쩌엇쩌
엇쩌엇쩌 엇쩌엇쩌엇쩌~~~~~

 

심부름

 

이웃 지구에서

불씨 얻었으니

저녁 지어야지

어서 집으로 가자

붙임: 가기는 가야 할 터인 데에

 

유기농
 

유기농 한다고 풀 뽑지 않았다
그들도 살아야 기에

마당보다 넓은 땅 대여섯 컨테이너
거두리라

이럴 수가

풀뿌리에 몰린 고구마 줄기들
풀뿌리 닮은 쭈그렁 몇 개

잡초 잡초에 몰려 잡초
잡초

잡초

 

술푸대
 

시詩

왜 이리 말 많고 지저분하냐

한두 마디로 지구 들었다 놓았다 해야지

아버지가 쓰세요

내가 시인이냐

술푸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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