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의 정체성과 북방문화의 교차점을 인문학적으로 탐색한 에세이집 《제주오롬이야기Ⅰ》이 출간됐다. 저자 문희주(시인·문학평론가)는 제주오롬문화 이사장이자 오롬문화 연구 및 저술에 헌신해 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이번에 발간된 《제주오롬이야기Ⅰ》(양장본, 255쪽)은 총 63편의 글과 100여 편의 칼라 사진을 담은 인문 에세이로, 도내·외 언론에 실린 300여 편의 오롬 칼럼 중 북방문화와 몽골어에 얽힌 글을 중심으로 재집필해 엮었다. 책은 열린출판사를 통해 발간됐으며 일부 출판비는 2025년도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문 교수는 기존에 ‘오름’으로 불렸던 제주 오롬의 명칭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오롬은 한국어의 ‘오르다’에서 파생된 ‘오름’이 아니라, 몽골어 및 북방어에서 ‘산’을 뜻하는 ‘ᄋᆞᆯ(ᄋᆞ리)’에서 유래한 말이라 주장한다.
이 어원은 제주어의 발음 특징과 결합해 ‘오롬’으로 변형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지명 정정이 아니라 제주의 정체성과 북방문화 간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특히 ‘개오리’라는 지명에 주목한다. 문 교수는 ‘개오리’가 ‘거리+오롬’에서 비롯된 말이며, 몽골어 ‘개(거리)’와 ‘ᄋᆞᆯ(오롬)’이 결합된 복합지명이라고 해석한다. 기존에 ‘견월악(犬月岳)’으로 왜곡되어 표기된 점도 바로잡으며, ‘개오리오롬’이라는 표현은 중복 표현임을 지적한다.
《제주오롬이야기Ⅰ》은 단순한 지명 해석을 넘어, 제주의 오롬에 얽힌 역사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풀어낸다. 원종 12년부터 14년(1271~1273)까지 이어진 삼별초의 제주 항전과 김방경 장군의 여몽연합군 격파, 그리고 파군봉의 유래 등을 상세히 다룬다. 특히 ‘파군오롬’이 ‘바굼지오롬’으로 와전된 것이라는 분석은 제주의 지명에 숨어 있는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몽골 지배기부터 조선시대 유배지, 근현대 4·3사건에 이르기까지 제주오롬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민중의 삶이 중첩된 공간임을 강조한다.
문희주 교수는 제주 출신으로 1970년대 외항선 기관사로 근무하다 병으로 하선한 뒤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중국과 몽골, 중앙아시아에서 2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북방문화를 탐사했다. 그가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 자료는 이번 책의 핵심이자 가장 큰 강점이다.
서문에서 문 교수는 “제주오롬은 제주어와 몽골어의 교차 지점에서 출발해야 그 정체성과 역사가 온전히 드러난다”며 “이 책은 단순한 여행안내서가 아닌 인문학적 탐사의 결과물”임을 밝혔다. 향후 2권, 3권, 4권까지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며, 이는 본인의 “남겨진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책 출간을 축하하는 다양한 메시지도 함께 전해졌다. 몽골 다르항인문대학교 최상택 교수는 “몽골어 ‘오올(산)’과 제주 ‘오롬’의 언어적 유사성은 흥미롭고 가치 있는 연구 주제”라며 “한몽 간 문화 교류의 다리를 놓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했다.
또한 연변대 객원연구원이었던 노귀남은 “서정범 교수의 국어어원사전처럼 제주어와 북방언어의 연관성을 밝힌 중요한 작업”이라며, 문 교수의 탐방과 연구에 찬사를 보냈다.
《제주오롬이야기Ⅰ》은 제주도민은 물론 제주를 연구하거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관점과 흥미로운 인문학적 해석을 제공한다. 오롬은 단순한 산이 아닌, 민족과 언어, 역사와 삶이 교차하는 생생한 현장임을 이 책은 웅변하고 있다.
열린출판사 刊 값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