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06-10 11:32 (화)
이동희 시집 《지금 시》 출간
이동희 시집 《지금 시》 출간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5.06.09 1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희 시집 《지금 시》 표지
▲ 이동희 시집 《지금 시》 표지 ⓒ채널제주

시인 이동희가 새 시집 《지금 시》를 펴냈다. 오랜 시간 동안 삶과 문학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언어를 벼려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 ‘지금, 여기’를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삶의 구체적 현장을 시심(詩心)의 온기로 감싸 안으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빛나는 지혜와 의미를 길어올리는 그의 시들은 오늘날 독자들에게 잊고 있던 삶의 가치와 본질을 되묻게 만든다.

시집의 제목처럼, 이동희 시인의 시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고단하고 불완전한 삶, 때로는 무심하고 잔혹한 시간 속에서 그는 자연과 일상, 인간관계 속에 숨어 있는 온기를 포착한다. 그의 시는 유려한 형식미보다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성찰을 지향한다.

과거 선비 정신의 전통 속에서 ‘하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자’로서의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그는, 그러나 과거로 퇴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적 감각과 언어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에 밀착하여,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삶의 의미를 복원하는 데 집중한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시인의 언어가 누구보다 독자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일상 속 한 장면, 사소한 만남, 지나가는 계절 속에서 시인은 의미를 찾아낸다. ‘우산을 함께 쓴 기억’을 떠올리며 “비가 올 때마다 / 어김없이 / 빗소리가 화들짝 나를 두들기곤 했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은,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낸 기억을 다시 불러내어 그것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힘임을 알려준다.

이동희의 시에는 자연과 시간에 대한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다. 한 장의 단풍잎에서도 그는 생의 순환을 본다. ‘지고 피는 꽃은 한 몸’이라는 구절처럼,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젊음과 노년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그는 직선적이고 파멸을 향해 달리는 근대적 시간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순환과 현재성의 시간관을 제시한다. 이 시간관은 시인의 시세계에 생명력을 부여하며, 독자에게도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신의 은신처’로서의 육체, 어머니의 손길을 닮은 신의 존재, 모든 자연에 깃든 영혼—이동희 시는 종교적이되 교조적이지 않으며, 범신론적 사고로 인간과 자연, 신성을 하나의 흐름으로 포섭한다. 이는 고정된 가치가 해체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더 진실하고 풍요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지금 시》에서 이동희 시인은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선 통합적 시선을 제시한다. 선과 악, 성과 속, 이상과 현실이라는 오래된 경계를 허물고, 그 경계 너머에서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는 삶의 진실을 노래한다. 그는 말한다. “누구를 위해서 노래하지 않는다 / 오로지 시를 위해서만 / 노래한다 / 그래도 모든 이들의 / 꽃이 된다.” 시인으로서의 사명을 스스로 되새기며, 그는 무심한 일상 속에서도 다시금 시를 피워낸다.

이동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단지 문학적 성과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치열한 자기 성찰의 결과이며, 동시에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진실한 응시이자 고백이다. 오늘, 여기에 발 딛고 선 모든 이들에게 그의 시는 말없이 손을 내민다. 그것은 위로이며 격려이고, 때로는 벼락처럼 찾아오는 깨우침이다.

이동희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시란 결국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며, 그 삶에 담긴 숨결을 언어로 번역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번역의 언어는 참으로 따뜻하고, 깊고, 아름답다.
 

詩로여는 세상 刊/ 15,000원
 

단풍잎을 입다
 

오늘 아침 벤치에 차린 포목점에서
피륙 한 필을 골라
옷 한 벌을 마름했네
입성 성치 못한 봄날이 언제였던가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지는 나무,
나뭇잎에 쓰인 일기장엔, 그날처럼
울긋불긋 어휘들이 살아서 팔랑거리는데
실핏줄 흐르는 강물에 비춰보니
여름을 푸새하느라 갈 길 바쁜 갈옷만
출렁이고 있네,
출렁이며 흘러가고 있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주)퍼블릭웰
  • 사업자등록번호 : 616-81-58266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남광로 181, 302-104
  • 제호 : 채널제주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제주 아 01047
  • 등록일 : 2013-07-11
  • 창간일 : 2013-07-01
  • 발행인 : 박혜정
  • 편집인 : 강내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내윤
  • 대표전화 : 064-713-6991~2
  • 팩스 : 064-713-6993
  • 긴급전화 : 010-7578-7785
  • 채널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채널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channel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