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칸에 성함 적으시고 서명 해주시면 됩니다.” “뭐 적으라고? 이름? 어디? 여기? 여기?”
“아니요, 이 칸에다가...예~예~~”
반복되는 민원업무에 매일 아침 환한 미소로 친절을 다짐해보지만 민원서류 작성을 도와드리는 동안에 나의 말투는, 민원인과 끝말잇기라도 하듯 질~질 꼬리가 길어질 때가 있다. 조금 전 민원인을 맞이하던 순간의 밝은 표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번호표를 뽑고 팔짱을 낀 채 민원창구를 주시하고 있는 주민들을 의식하다보니 식은땀이 나고, 눈치껏 빠릿빠릿하게 신청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아주머니가 괜스레 원망스러워지는 것이다.
문득 예전에 내가 민원인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은 날, 타 병원에 제출할 서류가 필요했기에 접수직원에게 필요한 내용을 설명하며 발급 가능한 서류의 종류를 물었고, 직원은 “그러니깐 뭐요? 뭘 떼주면 되는데요?”라며 성내기 시작했다. 서류의 명칭을 모르고 온 것은 내 불찰이지만, 물어보며 발급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거다. 어이가 없어 멍하니 있다가 진료순서가 된 아버지를 따라 자리를 옮기던 도중 문틈으로 나를 헐뜯고 비웃는 말소리를 들었고, 나는 울컥하여 그 직원을 불러내었다. 그런데 이런...그녀는 만삭의 임신부였다. 결국 제대로 화조차 내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더 화나는 건 그 상황에서 울먹이고 있는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 내 아버지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모를 당하고 지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참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눈물이 났다. 여전히 당당한 그녀 앞에서...나는 바보였을까, 아님 정상적인 심장을 가진 한 사람이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양한 민원인을 대하면서 나에게도 나만의 철학이 생겼다.
민원인을 가족이라 생각하자.
상대방도 내가 아는 그것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자.
설사 모른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지 말자.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인 것을...
병원의 서류를 몰랐던 나처럼, 주민들도 주민센터의 모든 것이 생소할 것이라 생각하며 상대의 위치에서 마음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도 거울 속 내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너도 주민센터 민원업무를 담당하기 전, 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의 차이를 알고나 있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