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공민왕때 제주도에는 몽고인 목자들이 2,000필의 공마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최영장군(1374년)은 목호의 난을 정벌하러 제주로 가던중 사나운 바람을 피해 추자도로 대피하게 된다. 후풍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그물 깁고 고기잡는 법을 알려주어 생활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이에 주민들은 장군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매년 음력 7월 15일, 2월 1일 풍어를 빌며 사당제를 지내고 있다.
최영장군사당 안에는 조국도통사최영대장지신(祖國都統使崔瑩大將之神)이라는 신위가 있다. 여기에 1999년 ‘추자도’를 편찬하면서 조사한 추자면 대서리 최철주님의 최영장군 귀신 들린 이야기가 재미를 더해준다.
130년쯤 전 마을에 바보가 한 명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물 위를 걷는가 하면 꼭 최영 장군처럼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최영 장군 영혼이 들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유지들이 생각하기에, 아무리 그래도 바보한테 장군님 영혼이 들렸을까 싶어서 잡아오라고 하였다. 시험해 봐서 아니면 혼줄을 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역시 마을에 제일 똑똑한 박명래라는 사람을 데려오라 하여 바보에게 진짜로 장군님 영혼이 들렸는가 아닌가를 시험해 보라고 하였다. 박명래는 최영장군 위패를 생각해 내었다. 당시 최영 장군 사당에 있는 위패는, 무슨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고, 나무를 비단으로 싸서 모셔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박명래는 위패로 시험하면 진짜 영혼이 들렸는지 안들렸는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아 바보한테, “장군님, 위패를 무엇이라고 썼으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진짜 장군 영혼이 들리지 않으면 절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역시 똑똑한 박명래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바보가 느닷없이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러더니 ‘먹을 갈아라. 붓을 들어라. 명래야, 붓을 들어라.’하고는 ‘조국도통사최영대장지신(祖國都統使崔瑩大將之神)이라고 써라.’ 하였다. 그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장군님 영혼이 틀림없구나.’하고 바보를 모셨다고 한다. 지금 최영 장군 사당에 있는 위패는 그때 쓴 것이라고 한다.
바보한테 최영 장군의 영혼이 들리면서 신이한 능력을 보였다는 신이담이다. 추자도에서의 최영 장군의 무속적 신격을 보여 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이제 6월말 추자도에 800년 추자역사의 한 획을 긋는 2,800톤급 전천후 대형 여객선이 취항하게 된다.
추자도에선 이에 발맞춰 온주민이 합심하여 추자명소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 옷을 입혀 추자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하여 오고싶고 다시 찾고싶은 추자도를 만드는데 혼심의 힘을 쏫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