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천주교는 230년 역사의 켜속에 빛과 소금과 누룩이 되어가고 있는 은혜로운 성지 111곳을 선정하여 은총이 충만한 성지순례를 제공하고 있다. 111곳의 성지중 제주에만 무려 7개소의 성지가 있으며 이 곳 바람이 머무는 섬 추자도에 눈물로 두고 간 정난주의 두 살 난 아들 황경한의 묘가 111번째 성지로 선정되어 순례객들을 반기고 있다.
정난주 마리아는 정약현(정약종과 정약용의 맏형)의 장녀로서, 15세의 어린나이에 급제하여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던 황사영 알렉시오의 부인이다.
신유박해시 남편 황사영은 조선 교회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고자 배론의 토굴에서 중국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백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백서는 주교에게 발송되기 전에 발각되었고, 이로 인해 황사영은 순교하게 되고 부인 정난주와 황경한은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로 귀향을 가게 된다.
정난주는 1801년 음력 11월 21일 두 살 난 아들 경한을 품에 안고 귀향길에 올랐으며, 제주도에 도착하면 평생 노비생활을 하게될 경한이 상상되어 뱃사공에게 부탁 하여 추자도에 이르자 인적이 없는 해안가 갯바위에 아들을 내려놓고 생이별을 해야만 하는 아픔을 겪는다.
하추자 예초리에 남겨진 경한은 오씨 성을 가진 한 어부의 손에 거두어진다. 경한이 추자도에 내려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이름과 생년월일에 의해 그가 바로 황경한임을 알게 되었고 오씨의 아들로 키워졌다고 한다. 오씨의 집에서 장성한 경한은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고 살다가 낯설고 외로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후 예초리 남쪽 이곳 신대산 기슭에 외롭게 묻이게 된다. 그래서 추자에선 지금도 황씨 성과 오씨 성이 혼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추자도에 두고 간 경한이 보고 싶어 37년간 대정골에서 애간장이 녹았을 정난주 마리아 두고간 어미가 보고 싶어 처절한 외로움을 파도로 달랬을 황경한 이들은 눈물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지금도 신대산 기슭 눈물샘이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유명해진 황경한의 묘와 눈물샘이 추자올레 18-1코스 개장과 더불어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추자면에선 신대산 정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두 살 난 아기를 두고간 장소 물생이끝 바위위에 두 살 난 애기 상을 조성할 계획이다. 애기 상이 조성되면 천주교 순례자 뿐만 아니라 추자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종교를 떠나 추자십경중 우두 일출과 더불어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명상을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