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이나 토성엔
-오세영-
새벽 산책길에서
살모사가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입에 삼키는 것을 보았다.
어제 저녁에 나도
꽁치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먹지 않았던가.
하나의 생명을 먹고 사는 다른 또 하나의 생명
죽은 자는 죽인 자의 어머니,
이 무참하게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해 산 자는
식사 후 항상
물로
자신의 내장을 헹구어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목성이나 토성엔
물도 필요 없지 않던가.
살모사가 개구리를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시인도 꽁치 한 마리를 먹었다. 뱀이나 사람이나 다를 게 없다. 살아 있는 것들이 살기 위해 다른 것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죽은 자는 죽인 자를 살게 하는 어머니라 보았다. 만약 살아 있는 것들 모두가, 다른 살아있는 것을 위해 죽어주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결국은 아무도 살수 없는 암흑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식사 후 숭늉도 무참하게 저지른 죄를 씻으려 내장을 씻기 위해 마시는 거란다. 그래서 생명체가 없는 목성이나 토성엔 죄지을 일도 없고, 내장을 씻어낼 필요도 없으니 물이 필요치 않다는 역설이다.
살아가는 ‘자연의 이치’를 아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저작권자 © 채널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