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찬 노형동장

사실 협치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통일신라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합의의 정치를 꽃 피웠다. 신라는 화백회의, 백제는 정사암회의, 고구려는 제가평의 회의를 열어 국가의 중대사 결정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비록 그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제한적이기만 했지만 협치는 이처럼 일찍부터 우리 민족에게 정착되었다.
그러면 그때의 협치는 현재 민선6기 원희룡 도정이 이야기하는 협치와 어떻게 다를까? 나는 그것이 독단을 배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삼국시대의 왕들도 민선6기 원희룡 도정과 마찬가지로 협의의 정치를 표방했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왕이 뜻이 곧 합의였을 것이다.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자결하는 것에 대한 합의는 시대를 초월하여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생각하건데, 협치를 설명하기에 합의와 공감대 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방향이 맞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독단을 배제하겠다는 도정 최고 책임자에 결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을 것이다.
생각과 행동사이에는 선택이 존재하는 것처럼 초심과 결과사이에는 의지가 존재할 것이다. 협치라는 합의의 시대가 열렸다. 산적한 과제가 주는 피로감에 결정자의 초심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그의 의지를 북돋우는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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