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우와 강풍을 동반한 제16호 태풍 '산바(SANBA)'가 북상중인 16일 오전 전남 나주시 송촌동 이왕범(35)씨의 신고배 과수단지.
태풍이 오기 전에 서둘러 배를 수확하려는 이씨 형제의 숨가쁜 손놀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악몽과도 같았던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내습으로 막대한 낙과 피해를 입은 이씨의 과수원 바닥에는 썩고 있는 배로 가득했다.
7년째 배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씨는 "올해처럼 배농사가 잘 된 적이 없었는데 수확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쌍태풍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새로운 태풍이 온다니 수확의 기쁨은 이미 포기했다"며 긴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 태풍에 1만1570㎡ 규모의 과수원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던 신고배 70% 가까이가 땅에 떨어져 멍들고 깨졌으나 피해 보상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이씨는 "재해보험료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면 농약 외상값과 자재값, 대출금 이자를 상환할 수 없어 그나마 남은 배라도 수확을 서둘러야 추석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뒤 얼굴이 굳어졌다.
예전에는 낙과 피해 조사가 비교적 신속히 이뤄져 배즙용으로 일부 판매해 숨통이 트였으나 올해는 워낙 피해 지역이 광범위해 피해 조사를 하는 데만 15일 이상이 걸렸다. 새로운 태풍이 원망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과수원 바닥을 가리키던 이씨는 "지금 썩고 있는 배는 피해 조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방치된 배"라며 "수습도 하기 전에 또 태풍이 온다니 아깝지만 내년 농사를 위해 거름으로 밖에 이용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이씨는 "떨어진 낙과의 개수로 피해율을 산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배과수 농가들 대부분이 재해보험 보상방식에 대해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고 소개했다.
"재해보험에서 인정하는 착과율은 그루당 평균 배봉지 개수를 말한다"고 설명한 이씨는 "멀쩡하게 수분이 돼 건강한 열매가 맺혔는데 봉지를 안씌울 농민이 어디 있느냐"며 낙과율 산정방식을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씨는 "두 번 태풍에 낙과되지 않고 견딘 배가 이번 태풍까지 견딜지는 미지수"라며 "올해 추석까지는 배 재고량이 있어 가격이 안정되겠지만 설 대목에는 배가 없어 배값이 금값이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인근 농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두 차례 태풍에 가까스로 낙과를 모면한 과실들이 강풍에 호우까지 동반한 이번 태풍을 견뎌낼 수 있을 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시시각각 태풍의 진행 경로를 지켜보고 있다.
한 농민은 "수확철을 눈앞에 두고 3차례나 태풍이 덮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나마 남은 배마저 뚝뚝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나주시는 연이은 태풍의 영향으로 나주배 전체 재배면적 2390ha 가운데 60% 이상인 1434ha가 낙과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집계 했으나 북상 중인 태풍 '산바'로 더 큰 피해가 날 것에 우려하고 있다.【나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