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법정서 혐의 대부분 부인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고위 관계자들의 형사사건에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크고 작은 소란을 피워 재판부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10일 저축은행으로부터 수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대통령 친형 이상득(77) 전 의원에 대한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20여분동안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었다.
이날 법정에 찾아온 저축은행 피해자 한 명이 "목소리를 크게 해달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 발단이었다.
이 부장판사는 "재판 중 소리를 지른 행위는 재판 진행을 어렵게 한다"며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재판이 끝난 뒤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다.
이후 피해자들을 대표해 발언권을 얻은 이모씨는 "우리의 억울한 사정이 담긴 탄원서를 청와대와 법무부 등에 제출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다"며 "재판부가 저축은행 비리로 숨겨진 돈을 찾아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부장판사는 "억울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이 재판은 저축은행의 피해에 관련된 재판이 아니라 피고인의 유·무죄를 다투는 재판"이라며 "피해자들이 원하는 모든 사안이 심리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참관해 달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다음 공판부터 법정에 직접 출석하는 이 전 의원을 보고 감정이 격해질 것을 우려, 향후 재판 진행에 협조해 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앞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지난 7월10일 이 전 의원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두할 당시 물과 계란을 던지고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등 소란을 피운 바 있다.
또 솔로몬저축은행 측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희중(44)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는 '자리가 없어 참관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익요원의 퇴정을 요구하다 재판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향후 재판의 쟁점이 되는 사안을 하나씩 짚어주며 검찰과 변호인 측의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했다.
재판부는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 측이 자금을 조성하고 운반·전달한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 전 의원이 자금을 받은 뒤 어떤 식으로 사례의사를 표시했는지, 받은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 지 등을 집중 심리할 계획이다.
특히 이 전 의원 측은 코오롱 측에서 1억5000여만원을 받아챙긴 혐의에 대해 보좌관이 받은 것이라는 주장하고 있어 재판부는 이 전 의원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가릴 예정이다.
아울러 이 전 의원 측은 범죄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는 취지의 답변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의원 측은 답변서에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만난 적은 있지만 돈을 받은 사실이 없고, 코오롱 측으로부터 받은 돈은 보좌관인 박배수씨가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2007년 10월 임석(50·구속기소)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명목으로 현금 3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7년 12월 중순께 김찬경(56·구속기소)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저축은행 경영 관련 업무에 대한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이 전 의원은 아울러 2007년 7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코오롱그룹으로부터 위원실 운영경비 명목으로 매월 250만원~300만원씩 모두 1억575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챙긴 혐의도 있다.
이 전 의원에 대한 다음 공판은 24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