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위원장은 연임 과정에서 극심한 반대 여론에 시달려 큰 상처를 입었다. 각종 시민사회 단체들은 현 위원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섰고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여당 의원들도 현 위원장의 적격성에 의문 부호를 달았다. 인권위원장에 대한 첫 인사청문회였지만 청문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다.
가장 뼈아팠던 것은 인권위 내부의 비판 여론이었다. 인권위 직원들은 신문에 현 위원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광고를 냈고 일부 직원은 위원회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였다. 현 위원장 재임 기간 동안 인권위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인권상황이 오히려 후퇴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논란 끝에 재임에 성공한 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인권위 직원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며 "인권위가 정치로부터,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 위원장은 지난달 13일 새 임기 시작과 함께 인권위 쇄신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상임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쇄신 TF' 구성을 지시했고 직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개별 면담도 진행했다.
하지만 내부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현 위원장은 직원들이 위원장에게 직접 의견을 전하는 실명게시판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익명게시판 대신 실명게시판을 설치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권위 노조는 "위원회 쇄신은 지난 3년에 대한 평가와 반성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쇄신의 의지가 있다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의 한 직원은 "쇄신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점은 없다"며 "위원회가 예민한 인권 현안에 과감하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변할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 기관에 대한 인권위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권위가 국가기관에 내놓은 정책권고의 수는 2008년 37건에서 지난해 21건으로 줄었다. 권고 수용률도 51%에서 33%로 뚝 떨어졌다.
한 인권위 직원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권고 수위도 상당히 약해졌다"며 "권고 수위가 약해졌는데 수용률이 떨어졌다는 것은 인권위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형제애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위가 별 다른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인권위의 위상 하락을 보여주는 한 예다.
인권위는 지난 2005년 정부에 사형제 폐지를 권고했고, 이후 강력범죄 발생으로 사형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 때마다 성명 등을 통해 사형집행 부활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인권위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청와대에서 사형집행 재개를 논의하고 있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 직원들은 현재 인권위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고 자평했다. 인권위가 굵직굵직한 인권 현안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기가 떨어지고 능동적으로 일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인권위 노조 관계자는 "결산 국회가 끝나고 현 위원장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 만큼 어떤 변화를 줄지 지켜볼 것"이라며 "이달 있을 인사와 쇄신 작업을 지켜본 뒤 직원들도 본격적으로 현 위원장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를 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