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형 시인이 최근 첫 시집 《천 개의 질문》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에는 총 67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다채로운 고원의 언어를 통해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집은 수많은 존재 일체가 퍼즐의 조각처럼 규칙적으로 교차하는 가운데 시적 사유를 발견하며 각기 다른 존재들의 비정형성의 이미지를 하나의 공간 이미지로부터 촉발하여 수많은 연상 이미지를 생성한다.

게다가 다양한 방식으로 증식되는 존재에 대한 고유한 의미 계열을 가로지르며 직관적으로 파고든다.
“안으로만 말리는 겹겹의 탄력”(「손안의 양파」) 같이 그 의미의 층위를 시인은 수사적으로 이동, 확장, 변주시키면서 전체 고원과 마주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의미망의 “껍질을 벗길 때/ 속으로 말아 넣은 촉촉한 이력이” 드러나고 “결마다 매끈해지는 나이테” 같은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표제작인 《천 개의 질문》은 은행나무가 가지에 매달고 있는 “수많은 인연의 겹”을 상징하며 존재들 간의 관계 맺음을 통해 형성된 인연의 그물망을 드러낸다. 이는 ‘안과 밖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고원의 퍼즐로 연결된다.
이처럼 은행나무가 가진 겹겹의 시간은 존재들의 구축해온 ‘인연의 그물망’으로서 천 개의 질문이 되는 동시에 이미 정해진 천 개의 해답이 된다.
그럼으로써 “세상일이 안과 밖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부동의 자세로 대웅전을 바라보는 나무”로 등장하는데 그것은 안과 밖이 연결된 고원의 퍼즐로 맞추어 진다.
문학평론가 권성훈은 “이 시집은 고원의 뿌리를 둘러싼 사유의 보폭을 보여준다”며 “모든 존재들이 언어의 퇴적물로 녹아 있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하늘 위로 솟은 곧은 줄기’처럼 고원의 깊은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하늘 위로 솟은 곧은 줄기’(「걸어가는 뿌리」)처럼 시행을 형성하는 그의 시에서 고원에서 깊어지는 ‘뿌리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듯이 ‘초록이든 연두든/받치고 있는 뿌리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그럼으로써 우리는 ‘밤마다 누워 내일로 전진’(「뒤로 전진할 때」)하고 있는 ‘천 개의 고원’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으며 던져진 세계에 대한 본질적 의미 또한 깨닫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조직형 시인은 “언제나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해 주위를 맴돌았다”고 밝혔으며 이제 자신의 말을 듣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2018년 《한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제주 작가회의와 시사랑 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서정시학 刊, 14,000원
[작품감상]
천 개의 질문
오후의 역광으로 찍는 뷰파인더 속 나무 한 그루
시커먼 실루엣으로
하늘을 떠받친 채 무섭게 서 있다
천 년을 넘게 산 은행나무
거대한 나무 밑에 서서
고개를 꺾어 하늘 같은 꼭대기를 쳐다본다
나무의 끝을 알 수가 없다
세상일이 안과 밖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서
부동의 자세로 대웅전을 바라보는 나무
저 가지 어딘가에 붙었던 나뭇잎으로
수많은 인연이 겹을 만든다
아직 이루지 못한,
가지에 매달고 있는 천 개의 질문
천 개의 눈이 있고
천 개의 귀가 있어
천 년을 산다는 것은 나무 하나만의 목숨은 아닐 것이다
그에 일 할도 안 되는 목숨으로
그를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쿵쿵거린다
나는 아득한 나무 앞에서
너무 높게 서 있었다
민들레처럼
아무 데나 빗줄기가 스며드는 곳이면
보따리를 풀고
건조한 바람에 실려 온 고단한 몸을 부렸다
얼마나 깊이 내려가야 발이 닿을지
닫힌 문 앞에 마냥
서 있었다
관절마다 갈퀴 같은 옹이박이고
텅 빈 뱃속을 드러낸 팽나무가
속절없이 예각으로 기울 때에도
나 여기 끄떡없이
서 있었다
강물은 깊어 돌을 굴리지 못하고
온몸으로 쓰다듬고 지나가지만
왔던 길을 뒤 돌아보지 않는다
어스름 땅에 납작하게 붙어
도도하게 하늘 향해 주먹 내지를 때
뿌리는
묵묵히 깊은 우물물을 길었다
내 몸이 긴 그림자 비울 때
둥근 바람을 받아 날기 위해
깃을 팽팽하게 세우고
처음부터 나 여기
꿋꿋이 서 있었다
바람보다 가벼운 주검
떨어지는 게 먼저인지
시드는 게 먼저인지 목록엔 없다
흰빛을 쓰다듬어 하늘을 가리고
다만, 푸른 잎을 보지 못하는 슬픔에 목이 멘다
눈을 뜨면 사라지는 순간들
순백의 꿈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키워 왔으나
걸어가지도 못하고 무거워 휘날리지도 못한다
드레스를 끌며 한 잎씩 널브러진다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하얀 고무신처럼
배어나는 슬픔을 끌어안고
노숙해야 하는 목련의
하얀 발바닥
눈을 감은 채 슬하의 옷자락을 거둔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바람보다 가벼운 주검이
꽃의 이름으로 검은 발자국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