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시] 토종동백
[독자 시] 토종동백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4.03.13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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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동백
 

문상금
 

꽃들
통꽃들
톡 톡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흡사 누가 단숨에 잘라버린 목숨 같은 것들이 나지막한 돌담 아래로 이리저리 뒹굴어 다니는 그 선혈 낭자한 밤이면

완경을 앞둔
여인의 마지막 생리 혈 덩어리처럼
뚝 뚝 뚝
 

-제8시집 「하논」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채널제주

온 몸으로 울고 싶었는데, 하루 종일 종처럼 울고 싶었는데, 종이 되지 못한 동백은 꽃송이들을 톡톡 터트렸다. 온 몸이 떨려 혼절할 때까지.

새벽녘 창을 열고 내다보면 아직 밤의 흔적들이 덕지덕지 남아있는 뜰에 흡사 누가 단숨에 잘라버린 목숨 같은 것들이 붉은 물감을 뿌린 듯 떨어져 있었다. 나지막한 돌담 아래로 이리저리 뒹굴어 다니는 그 선혈 낭자한 모습은 차마 섬뜩하였다.

오십대 중반 완경을 앞두고 이 세상은 코로나로 온통 초토화되었다. 월요일은 늘 붐볐던 서귀포의료원 접수 안내봉사를 수년째 하였었고 코로나가 발생하자 서귀포의료원 코로나백신 임시 접종 사무소에서 군인들과 함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 이동 안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흰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두 개 겹쳐서 착용하고 오 분마다 손 세정을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후 세시 삼십분 전후로 일일 접종해당자 450여명이 접종을 완료하셨는데, 갑자가 누군가 손짓하였다. “무슨 일이지?” 하고 달려가 보니 접종 담당 과장이셨다. “오늘 어르신 접종예정자 세 분이 못 오셔서, 준비한 백신이 남았는데, 혹 접종 하실 거면 삼분내로 결정 바랍니다. 안 하실 거면 대기자로 연락을 하게 됩니다” 하는 것이었다. 잠시 봉사자들과 멈칫거렸다. 아직 접종해당자도 아니었으며 솔직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사는 언제나 무서웠고 맞을 때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편이었다. “누군가는 봉사를 해야 할 것이고 또 늦든 빠르든 접종도 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봉사자의 “그 누군가는 봉사를...”이 말이 목에 탁 걸렸다. 데스크의 의사 세 분한테 달려가 “제가 저녁에 가게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혹 괜찮을까요?” “쉬면 좋겠지만 괜찮을 겁니다. 일 하시는 중간 중간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면 됩니다.” 그렇게 우연히 백신접종을 빨리 하게 되었다.

가게 일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온 몸 세포의 문이란 문들이 전부 열리는 찰라 몸이 공간으로 둥둥 떠오르는 것이었다. 백신이 몸 전체로 퍼져 돌아다니며 순식간에 제어하고 교란을 시키고 있는 느낌이었다. 오른팔을 들려고 해도 잘 들리지가 않았으며 걸으려고 해도 몸이 천근만근 말을 잘 안 듣는 것이었다. 아랫배가 묵직한 느낌이 오더니 갑자기 생리 혈 덩어리들이 용암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꽃샘추위에 미처 피어나지 못하고 시들거나 떨어져버린 꽃송이처럼 미처 피가 되지 못한 채 굳어버린 핏덩어리들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붉은 덩어리들을 닦아내며 그 선혈 낭자하였던 돌담아래 붉은 동백꽃들이 떠올랐다.

이런 선혈의 봇물은 출산할 때 외에는 처음이었다. “이까짓 것, 아이도 세 명이나 낳았는데...” 사나흘 이를 악물었다.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하였고 하나둘씩 세포의 문들은 “밤새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 감쪽같이 닫히는 것이었다. 폭풍처럼 한바탕 뒤흔들고 또 잔잔해지더니 비로소 완경이 되었음을 직감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동백꽃은 피어나고 또 떨어져 땅에서 피어나고 또 그걸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에서도 밤낮 피어났다.

시는 대부분 일상속의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태어난다. 거기에다 시적 상상력을 더하면 진솔하고 공감되는 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결론은 시인의 내적 교감과 경험적 행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좋은 시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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