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택 시인 시집 《서투른 곡예사》 발간
김병택 시인 시집 《서투른 곡예사》 발간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3.08.21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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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택 시인 시집 《서투른 곡예사》 표지
▲ 김병택 시인 시집 《서투른 곡예사》 표지 ⓒ채널제주

김병택 시인이 최근 시집 《서투른 곡예사》 발간했다. 70편에 이르는 시들을 보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친숙함이다. 그것은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자연현상을 제재로 하거나 시인이 평범한 일상에서 건저올린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에서 마주친 작은 울림을 시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하고 상투적인 풍경묘사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일상의 대상과 현실을 새롭고 신선한 의미로 재탄생시켜 새로운 감동을 들려준다.

그의 이러한 시적 역량은 미세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로 구축해내는 이미지 형상 능력 덕분이다.

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이미지이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시작품속에 개성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밝혀지고 그 작품 속에서만의 독특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바로 이미지를 통해 가능해진다.

그만큼 관념의 구체화로서의 이미지는 대상과 서정의 시적 조응을 통해 시작품에 표상된 시인의 미적경험이다.

또한 이 시집은 동일성의 회복을 위한 자아탐색이다. 이런 시적 특질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내가 열중하는 작업”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의 보여주는 시창작의 에너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강한 동일성의 상실감에서 유발된다는 사실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동일성의 회복을 위한 끊임없는 자아탐색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김병택 시인의 그러한 회복에의 열망을 담아낸 시작품을 통해 엿들으면서 공감하고 감동하며 치유받는 것이다.

김병택 시인은 제주시에서 태어나 1978년 7월호 현대문학에서 문학평론이 천료되어 문단에 데뷔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1986년에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 초기근대시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김수영·김춘수 등의 시와 시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30여 년 동안 시인론·시론·작가론·비평론·지역문학론·지역문학사·지역예술사·비교문학 등의 분야를 천착했다.

저서로 『바벨탑의 언어』 『한국 근대시론 연구』 『한국 현대시론의 탐색과 비평』 『한국문학과 풍토』 『한국 현대시인의 현실인식』 『제주 현대문학사』 『제주예술의 사회사』(상,하) 『현대시의 예술 수용』 『시의 타자 수용과 비평』 등이 있다.

다시, 2016년 『심상』(시)으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꿈의 내력』 『초원을 지나며』 『떠도는 바람』 『벌목장에서』 등이 있다.

황금알 刊, 값 10,000원
 

[작품감상]
 


 

높이 떠 있으면서 속속들이
사람들의 그리움을 품은 뒤
늘 구름과 함께 돌아다니는
내 일상의 구석까지 스며든다

애써 곰곰이 과거를 되살리면
수평선을 넘으려던 내 꿈을
막은 이유도 확인할 수 있으리라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밤에는
고향 마을의 숲을 가로지르며
새들과 함께 부르던 옛 노래가
긴 음파에 실려 내 귀에 들려온다

사방이 거칠게, 크게 흔들려도
휘황하게 뜬 밤하늘에서는
어두운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쉼 없이 하루 내내 별빛 부근
먼 곳에 있는 듯하지만 실제론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멀구슬나무의 희망
 

지금 막 도착한 집 마당에 서서
작은 잎들이 녹색 물결을 이루는
키가 큰 멀구슬나무를 바라본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며 무엇인가를
결심하는 젊은이와 영락없이 닮았다

언제나 하늘을 향해 크게 손짓하는
꼭대기의 무질서한 줄기들도
시간과 함께 자란 것임은 확실하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감도는 날에도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웃고 있는
아담하고 화사한 몸짓의 부잣집
관목들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비 내리는 날의 예고 없는 소음을
길고 긴 밤의 사막과 같은 고요를
좀처럼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고 들은, 가문의 영욕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체하는 일이 결코 없다

멍들면서, 때로 반짝이면서
역사는 갑과 을의 교집합 속에 있다는
명백한 사실조차 모르는 척하기 일쑤다

멀구슬나무는 모든 것을 멀리하고
한 그루 키 큰 나무로만 남고자 한다
 

밤의 달맞이꽃
 

바람이 초가집 주위를 휘돌 때
몸을 움츠리던 달맞이꽃이
밤의 색깔을 가르며 꽃을 피웠다

하늘을 향해 일미터 높이로 서서
둥근 모양으로 쌓인 노란색의 외로움을
오랜 시간 곱씹는 게 자주 보였다

때론 세상을 인내하는 사람의 자세로
서늘한 밤의 파수꾼이 되기도 했지만
돌방아 속의 곡식보다 더 거친 삶을
좀처럼 잊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따뜻한 달빛 풍성하게 내리는 날
내가 웃는 얼굴로 슬며시 다가가면
지난 일 묻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일하는 시간이 모자라 겨우
밤이 되어서야 달을 보며 숨을 고르시던
정미년생 내 어머니를 닮은 꽃
누가 볼세라 다소곳이 피어 있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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