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달환 칼럼](37)청년 입학
[현달환 칼럼](37)청년 입학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6.05.22 2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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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입학

선생님,
담배, 하나주세요.
담배, 맛이 그렇게 좋아요?
담배, 입에 문 모습이 환상적이네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선생님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순간 하얀 속살로
내 머릿속에 빙빙거리고
내 마음을 사로잡아.

깊게 들이마신
뽀얀 연기에
최면 걸린 사람마냥 희죽이고
쥐도 새도 볼까
사방팔방 두리번대고
폐 속 깊이 다다란 첫 모금의 온기가 희미해질 즈음
내가 디딘 세상이 좁다 느껴집니다.

선생님
담배 하나주세요!
말보로 하나 입에 물고
폼 나게 걷고 싶어요.

(‘문장21’ 2012 가을호 수록)

▲ 현달환 시인/수필가
메모장을 보니 09.6.13에 쓴 글이다.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담배하나 피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난 5월의 셋째 월요일인 5월 16일은 성년의 날(Coming of Age Day)이었다. 한국의 경우 민법상 만19세에 이르면 성인으로 되고 그전에는 미성년이라는 말을 쓴다. 성인의 날은 책임을 일깨우고 자부심을 고양하기 위한 날이다.

그런데 성년의 날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기록에는 73년에 시행되어 유명무실해지자 문화관광부에서 199년 전통의 예법을 변형해서 전통관례복장을 입고, 어른들의 축사를 듣고, 술을 마시고, 성인이 된 것을 선언하는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 등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이 또한 별 호응이 없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은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삶속에 자리 잡고 있다. 성년은 대학교 1학년이나 2학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이럴 때 제일 하고 싶은 게 담배가 아닌가 싶다. 담배를 피우게 되면서 정말 폼 잡고 싶은 마음이 있다.

우리의 청춘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감에 누구의 간섭과 지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성년의 됨을 축하해주고 정말 뜻있는 날을 만들어주는 것이 인생의 참의가 있으리라……. 이 시대의 진짜 멋진 스승은 이 땅의 젊은 청춘에게 무슨 day(데이), day(데이)하면서 달콤한 초콜릿을 주는 것보다는 쓰디쓴 담배연기와 소주 한잔으로 인생을 체험하면서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인생은 담배연기처럼 콜록거리기도 하고 소주 마시고 비틀거리기도 한다는 걸 체험한다면 인생을 보는 생각이나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살면서 그런 멋진 선생을 보지 못했다. 나의 인생의 참된 스승은 담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지나간다.

며칠 전, 중학교 은사님이랑 소주 한잔 하는데 참 멋진 분이었다. 새벽 3시에 글을 쓰고 있다는 말에 내 자신이 깜짝 놀랐다. 저것이 살아 있음이구나 하는 생각에 술이 확 깨었다. 삼라만상이 다 주무시는 시각에 혼자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주문하듯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웠다.
지금은 청년이라는 시기가 나이가 60까지 올라가고 있는 이 때에 아직도 청년인 나는 부족하기만 느껴져서 반성을 해본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나도 은사님처럼 밤 새벽에 깨어나서 깨끗한 공기의 입김으로 하얀 백지를 뜨겁게 달구리라 다짐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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