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달환 칼럼](34)고무신 가족
[현달환 칼럼](34)고무신 가족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6.05.16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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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가족

아버지가 신은 신발은
하얀 고무신
내가 신은 신발은
검정 고무신
동생이 신은 신발은
얼룩 고무신

문 앞에
고무신 세 켤레
또 하나의 가족.

 

▲ 현달환 시인/수필가

고등학교 1학년 말인가 2학년 때인가 학교 행사에 시화전 한다고 문예반에 출품했던 시이다. 그때의 글을 아직까지 외우고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한테 놀라웠다.

나이가 들어 멋모르고 詩 동아리를 할 기회가 생겨서 비자림 입구에 시화전을 하자는 의견에 시를 써둔 것이 없어서 이 작품을 제출하여 액자를 만들어서 1주일동안 전시 했는데 관람객들이 많이 좋아했다는 애기를 들었다.

옛날 어릴 적엔 우리 집도 그렇지만 옆집, 뒷집 등 보통 가족 수가 4~5명 이상은 되었다. 자녀들 형제수가 지금처럼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문지방에 있는 신발도 꽤 많았다. 가족이 여럿이다보니 한사람이 한 켤레만 해도 많았다 (지금은 1인 가족인데도 신발이 그때보다 많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발은 누가 뭐래도 같은 혈족이었다. 고무신이 대다수이니 그때는 ‘고’씨 가족들이 주름잡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시를 읽던 아이가 ‘엄마 고무신은 어디 있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글쎄, 엄마 신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밭에 갔을까. 아니면 바다에 갔을까. 엄마는 늘 집에 없었다. 일하러 다니시느라 집에 없었다. 고무신도 대충 아무거나 신었다. 바늘로 찢어진 부분도 꿰매어 다니던 시절이라서 있으면 신고 다녔다.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어느새 이만큼 흘렀다. 아이가 군대 가고 결혼하고 다시 아빠가 되는 과정 속에 인생은 돌고 돈다.
그러나 저 고무신 가족은 이제 삶에서 사라지고 있다.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고무신 가족이 우리 집에서는 볼 수가 없으리라.
과거 농촌 축구화로 더 잘 알려진 고무신이 신고 싶다. 올 여름엔 신발가게에서 하나 장만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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