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충남 논산시 사회복지과에서 근무하던 김 아무개씨(33)가 숨지기 일주일 전에 쓴 일기가 발견됐다. "나에게 휴식은 없다. 사람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 쌓여간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 석 달 앞선 2월, 경기도 성남시의 한 주민센터에서 일하던 강 아무개씨(32)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그녀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90명, 장애인 1020명, 기초노령연금 신청 대상자 800명, 보육료 양육수당 신청 대상자 2659명을 총괄하는 업무를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5월에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다.
사회의 그늘을 돌보는 복지 담당자의 자살 도미노가 멈추지 않는다. 충남 아산시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사회복지 공무원을 대상으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한 이유다. 충남 아산시는 충남노동인권센터에 의뢰해, 심리 치유 프로그램 '두리공감'을 진행하고 있다. 본격적인 심리 치유에 앞서 아산시와 충남노동인권센터는 8∼9월 두 달에 걸쳐 아산시 사회복지 공무원 101명 가운데 74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3월30일 사회복지사 자살 방지 및 인권 보장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 결과 조사 대상자 가운데 39%(29명)가 고위험 스트레스군으로 분류됐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고위험 스트레스군은 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신경증·우울증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고위험 스트레스군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스트레스군도 58%(43명)나 되었다. 특이한 점은 근속 연수가 짧을수록 그 스트레스 정도가 심했다. 근속 10년 미만인 경우, 51%가 고위험 스트레스군에 속했다. 올해 초 자살한 사회복지 공무원 4명 가운데 3명이 지난해와 올해 임용된 신입 공무원이었다.
최근 복지정책이 늘면서 업무량이 증가했지만 사회복지사 증원이나 처우는 개선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2년 11월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지방자치단체 복지인력 실태 및 증원규모 분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5년간 복지정책 재정은 45%가 늘었다. 지방복지 재정도 71.8%, 복지제도 대상자는 무려 157.6%가 증가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 수는 4.4% 느는 데 그쳤다. 2013년 현재 16개 부처 292개 복지사업 중 197개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뤄진다. 이는 온전히 사회복지 공무원의 몫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업무량 더욱 가중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업무는 더 가중되었다. 올해 만 0∼5세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보육료 지원사업과 초·중·고생 교육비 지원사업이 폭탄 투하되듯 이어졌다. 소득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받아 스캔하고 전산에 입력하는 '간단한' 업무는 신규 직원의 몫이다. 하지만 동(주민센터)에 따라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사업이 시행되기 직전인 2월, 하루 만에 신청자 100∼500명이 몰렸다. 2013년 보육료, 양육수당 및 초·중·고생 교육비 지원 신청 건수는 전국적으로 279만여 건에 달했다. 평소의 10배 수준이다.
충남 아산시가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이와 같은 업무 하중이 확인되었다. 전체 20개 항목에 걸친 자가 평가로 이루어진 우울 정도 평가에서 응답자의 45%가 우울하다고 답했다. 이 수치가 얼마나 높은지는 비교 집단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산시와 충남인권센터는 ㅎ기업 노동자를 비교 집단으로 삼았다. 그 결과 아산시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경미한 우울 14%, 우울 수준 12%, 주요우울 수준 19%로 총 45%가 우울한 데 비해, ㅎ기업 노동자들은 경미한 우울 19%, 우울 수준 4%, 주요우울 수준 7%로 모두 30%가 우울했다. 치유가 필요한 '우울 수준'과 '주요우울 수준'의 경우 사회복지 공무원이 일반 기업 노동자에 비해 3배 가까이 되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자신이 불안을 경험한 정도를 4점 척도로 답변한 불안 검사에서도 아산시 사회복지 공무원의 약 27%가 불안 상태에 있으며, 비교군인 ㅎ기업 노동자들은 12% 정도였다. 조사를 맡은 충남근로자건강센터 박정진 상담심리사는 "직무 스트레스에서 두 집단의 차이를 보면,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비교군에 비해 '직무 요구'에서 높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시간적 압박, 업무량 증가, 책임감, 직무 부담 등이 다른 집단에 비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아산시 사회복지 공무원 조 아무개씨(42)는 하루 평균 10시간을 일한다. 자녀 저녁밥을 차려주기 위해 퇴근했다가 한 시간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다. 실제 퇴근 시간은 오후 10~11시. 이렇게 일처리를 하지 않으면, 다음 날 폭주하는 민원 때문에 또 업무를 미루게 된다. 현재 조씨는 아동시설 45곳을 감독·관리한다. '학대를 당했다'거나 '부패된 음식이 급식으로 나왔다'고 보도될 때마다 뭇매를 맞는 업무다. 시설 45곳을 하루 한 군데씩 쪼개 다녀도 한 달 보름이 걸린다. '완벽한' 감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역 결식아동을 선정하고, 업체를 책정하고, 돈을 집행하는 업무도 그의 몫이다. 총 3000명분이다.
"기초노령연금 뉴스 보고 혼이 나갔다"
이렇게 업무가 몰리는 '깔때기 현상'이 벌어져도 동료에게 부탁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낸 '복지전달체계 개선대책(안)'에 따르면, 2010년 6월 기준으로 읍·면·동에 배치된 사회복지 공무원은 약 1.6명이다. 3467개 읍·면·동 가운데 사회복지 공무원이 한 명도 배치되지 않은 곳도 51군데에 이른다. 여기에 가욋일도 붙는다. 예를 들면 초·중·고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교육부 업무다. 하지만 교육부가 주민 소득을 조회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 소속인 사회복지 공무원이 일을 떠맡았다. 국토교통부의 주거복지, 여성가족부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 문화체육관광부의 여행바우처 같은 사업도 수습은 이들의 몫이다.
앞으로 터질 '폭탄'은 기초노령연금이다. 조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 노인에게만 연금을 지급하겠다며 공약을 수정하는 뉴스를 보고 "혼이 나갈 뻔했다". 애초 공약대로라면 소득 기준 없이 일괄적으로 20만원씩 지급해, 소득 재산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70%를 구분하기 위해 한 사람당 최소 40분을 상담하고, 전산에 입력하고 결재를 받기 위해서는 두세 시간을 거쳐야 한다. 인구가 많은 동에서는 노인 인구 2만여 명, 어림잡아 최소 6000명 이상을 상담해야 한다.
정부는 사회복지 공무원의 과다업무 문제가 여론화되자 2014년까지 복지담당 공무원 7000명을 충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회복지 공무원 사이에서는 일선 현장에 한 명 추가 배치되는 수준으로는 과도한 업무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충남근로자건강센터 정우철 부센터장은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처한 업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조사를 바탕으로 아산시와 충남노동인권센터는 수개월에 걸쳐 개인상담 지원, 추가 검사, 집단상담 등을 병행할 예정이다.
출처: 시사라이브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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