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국세청내 퇴직예정 고위 간부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노골적으로 세무사 개업에 따른 '일감 청탁'을 일삼는가 하면 관내 기업들에 세무조사 편의를 조건으로 고문이나 사외이사 등의 보직 제의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제보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소재 S세무서 A모 과장은 직속 계장에게 기장업무청탁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계장은 S세무서 관할에서 연매출 500억원 이하 기업 중 믿을만한 업체들을 선정, 해당 기업 담당자를 불러 A과장이 퇴직 후 세무사 개업을 하면 A과장에게 세무대리업무를 맡겨줄 것을 요청했다.
가격도 구체적으로 나열됐다. 기장건수당 월 50만원, 기장업무 외에도 고문 등의 형태로 세무컨설팅 업무도 맡는다고 전달했다.
해당 계장은 기업 관계자들에게 2~3년 정도 A과장에게 기장업무를 주면, 그 대가로 영향력을 행사해 세무조사 편의를 봐주고, 납세자의 날 표창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의했다. 전관예우를 악용한 로비까지 약속한 셈이다.
서울지방국세청 내 전관예우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 5월 28일 서울지방경찰청은 뇌물수수 혐의로 전·현직 국세청 사무관(5급) 이모(57)씨 등 2명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같은 날, 이들과 더불어 세금 로비에 협조한 6급 이하 조사관 8명도 함께 불구속 입건했다.
같은 달 29일엔 뇌물수수 혐의로 41명을 추가적발 300만원 이상 금품수수 혐의가 있는 16명만 형사 입건하고, 나머지 25명의 비위 공무원에 대해선 국세청에 통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세무사 신모씨는 세무대학 출신 전직 국세공무원을 가장해 현직 국세공무원과 접촉, 친분관계를 쌓으며, 세무조사 무마나 편의를 목적으로 향응과 금품을 전달했다.
신 세무사의 수첩에 적힌 국세공무원의 연락처가 130개에 달했다.
신모씨가 ‘선배’를 가장한 것이 사건을 크게 벌였다. 이 역시 주된 비리의 진원지는 서울지방국세청이었다.
2013년 국세청 전체 금품수수 징계 52건 가운데 50%인 26건이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발생했다.
2014년 상반기엔 금품수수 관련 징계 59건 중 26건이 서울지방국세청의 몫이었다.
국세청 징계처분 내용을 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2009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경찰청과 감사원 등 외부기관에서 적발한 금품수수 국세청 직원은 79명으로 이중 74.7%인 59명이 파면, 해임, 면직 등 공직 추방의 중징계를 받았다.
국세청이 적발한 금품수수 공무원은 162명이었지만, 공직추방은 9명에 불과했다.
감찰능력이 덜 떨어지거나, 솜방망이 처분이란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비리의 주된 진원지로 지목을 받고 있으면서도 서울지방국세청은 별다른 대책을 만들지 않고 있다. 감찰기준은 국세청에 따르고, 국세청은 전 공무원에 준용되는 공무원 윤리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한다. 제도가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서울지방국세청의 한 고위 간부는 감찰권한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감찰부서는 수사권이 없다보니 감지 자체가 어렵고, 감지를 한다고 해도 금융계좌조회 등 깊숙한 조사를 할 수 없고,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답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지만 한번 생각해볼 점이 있다.
국세청은 절대로 감찰능력이 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징계처분이 약한 현 상황에서 감찰능력이 강하다고 말하면, 사건을 축소 징계심의에 올렸다는 뜻이 된다.
서울지방국세청 관계자의 말이 맞다면, ‘약한 국세청’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다.
국세청은 전 국민, 기업의 과세정보를 가진 이른바 5개 권력기관으로 분류된다.
그런 중요 기관의 내부감찰력이 약하다면, 전직-현직 국세공무원 그리고 기업간 비리와 유착의 세무카르텔을 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비리가 빈발하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서울지방국세청의 비리가 높은 이유를 기업과의 잦은 접촉으로 지목한다.
국내 주요 기업이 수도권, 특히 중부지역과 강남지역에 몰려 있다보니 다른 지방청보다 유혹의 손길이 곱절의 곱절만큼 더 많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징계건수가 불과 7건에 불과했으나, 세무조사가 본격 강화되는 2013년 26건으로 3.5배 이상 폭증했다.
빗나간 관행은 매우 단단하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예전부터 이어져 온 악습이 생계란 미명으로 근절되지 않고 있다.
여기엔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밀어주는 연고주의가 뿌리박혀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다음은 모 대형 세무서 계장(6급)의 말이다.
“퇴직 후 관할 내 세무사 개업을 하려는 서장님(4급)이나 과장님(5급)들은 퇴직 전에 몇 개월 전부터 세정협의회(기업, 사업자들로 구성된 세정협조 협의회)나 기업들을 돌며 세무대리업무를 따내기 위한 사전영업을 한다.
자신이 직접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기업을 자주 대하고, 세무서 내 직분이 높은 법인세 계장(6급)에게 시킨다.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켜서 하는 거지 대부분은 싫어한다.
국세공무원으로서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시키는 데 어떻게 할 수도 없고…(중략).
기업에서도 퇴직철이 되면 예비 퇴직자 청탁에 몸살을 앓는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세청 퇴직철마다 올해는 어떻게 되나하고 걱정부터 앞선다”며 “퇴직을 앞둔 국세공무원들이 세무사 사무실을 차린다며 일감을 달라고 요구하는 데 기업입장에서는 세무조사가 워낙 무섭다보니 거절할 수도 없고 매우 곤란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기업관계자는 “말이 제의지 사실상 강요나 다름이 없다”며 “이미 일감을 주고 있는 세무대리인이 있어도 또 계약하지 않을 수 없어 비용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한 관리자급 국세공무원은 일감청탁은 국세공무원의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구지책 때문에 그런다고 하지만, 4, 5급쯤 되는 퇴직 공무원들이 생계가 급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퇴직해서도 이권을 챙기기 위해 부서 업무는 팽개치고 영업하러 돌아다니며, 후배 직원들 시켜 영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공무원이란 이름만 달았지 공무원이 아닌 선배들이 많다.”
일선 세무서의 실무직원들은 선배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깊은 불만을 말한다.
“세무서 일선직원들은 군말없이 박봉에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조금의 흠집도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고위직이나 관리자급 직원들의 비리로 언론에 오를 때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가 얼마나 떨어지는 지 되새겨 봐야 한다.”
출처 : 일간NTN / 고승주 real-folk-blu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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