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14일 정부과천청사 X동의 기자실. 평소 언론 접촉을 꺼리던 A장관 정책보좌역이 기자실에 나타났다. “너무 더워서 내려왔다”는 게 그의 설명. 정부부처가 ‘객식구’인 언론사 출입기자들을 배려해 에어컨을 비교적 가동하는 기자실로 ‘피서’를 온 것이다.
공공기관 냉방 제한 시행으로 공무원들이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시원한 곳을 찾아 헤매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대정전(블랙아웃)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12~14일 부처의 냉방을 전면 금지하며 고강도의 절전책을 내렸다.
공무원들의 주 타깃이 되는 곳은 ‘기계’가 있는 전산실이다. 온도에 민감한 전산 장비들이 마비되면 안 되니 냉방을 가동하지 않을 수 없다. 보안상 지정된 직원 외에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있지만 ‘일거리’를 찾아 내 피서를 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공무원은 “사무실이 너무 더워서 요새 전산실에 일을 보러 들락거리는 일이 잦아졌다”며 “전산실에 아는 사람이 없는 동료들이 나도 데려가 달라고 ‘로비’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송파구 중대로에 위치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침해사고대응센터의 종합상황실 직원들은 근래 또다른 ‘직업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24시간 3교대 격무에 시달리지만 요새 회사 내에서 가장 시원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 우리나라 230만개 주요 사이트의 해킹 징후를 사전에 탐지하는 중책을 대한 보안 관제를 맡는 종합상황실은 ‘비교적 낮은’ 실내 온도를 유지 중이다.
KISA 관계자는 “26도 이내로 유지해야 장비가 안전하게 돌아가는데, 이게 멎으면 큰일난다”며 “사람보다 장비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우리 부서 한 명이 더위에 지쳐 쓰러져서 겨우 에어컨을 약간 틀었는데 다시 선풍기만 틀라고 명령이 떨어졌다”며 “요새 전력난을 두고 ‘컴퓨터 하드가 꽉찼는데 용량이 많은 동영상 파일은 안 지우고, 문자파일을 계속 지우는 셈’이라고 비유한 인터넷 댓글이 있던데 매우 동감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XML
출처: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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