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2017영주신춘문예 당선작 선정 발표
제10회 2017영주신춘문예 당선작 선정 발표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7.01.01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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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문별 당선자, 송창권(시), 임지나(시), 김지희(수필)씨
전국에서 총 1222편(시 667, 시조 105, 수필 450) 응모
21일 오후3시 도민의방에서 시상식…시조는 당선작 못내
▲ 2017 영주신춘문예 당선자(사진 왼쪽부터) 송창권(시 부문), 임지나(시 부문), 김지희(수필 부문)씨 ⓒ영주일보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영주일보사’가 인터넷 신문사상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제10회 2017 영주신춘문예’ 당선작이 선정, 발표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지는 영주신춘문예의 시부문 당선작은 임지나(전북 군산시)씨의 ‘5월 억새에 보내는 시’와 송창권(제주시 외도동)씨의 ‘고립’이 결정됐다. 수필부문에서 당선작은 김지희(경주시)씨의 ‘노루발’이 선정됐다.

시조부문에서는 안타깝게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시조부문 심사위원들은 ”결국 아쉽지만 올해는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응모해주신 분들의 실망도 크겠지만 심사를 하는 심사위원과 영주일보사에서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응모작은 총 1222편(시 667편, 수필 450편, 시조 105편)이며, 시상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추후 당선자들에게 개별적으로 공지할 예정이며, 시상식은 1월21일(토)오후 3시 제주시 연동 소재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당선작가에게는 100만원의 상금과 함께 인터넷신문 ‘영주일보’의 상패가 수여된다.

[시 당선작]

고립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숱한 바람 따라 머무른 그 곳
네모난 절벽에 떨어지고 만다

불빛만 화려해진 세상
정작
고요라는 추상은
저 몸짓에 지워져 가는가

여기
좁다란 땅에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콘크리트 벽으로
창살로
아!

동트는 새벽 미명이라도
만질 수 있으려나
아니,
보기만 해도
볼 수만이라도 있으려나.

세상 속에 푹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각진 영혼이여
시나브로 작아지고 있다
버려지고 있다
저 네모 속에 몸부림치는 고적(孤寂),
무덤 속의 침묵!

▲ 송창권씨(시 부문 당선자) ⓒ영주일보

[당선 소감]

끄적거리 시작한건 오래 되었지만, 감히 어딜 출품한다는 맘을 먹은 건 연하의 선배 시인의 권유로 인한다. "시인으로 등단하고부터 본격적인 시를 쓰는 것이지, 완숙미를 갖춘 후, 등단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란다.

용기를 내어, 어설픈 시인의 뒤안길을 헤매였다. 일반인들은 시인들이 어떤 시상에 빠져서 즉시 한 간의 돌담집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천재를 만들어 버린다. 물론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작가들도 초고는 끔찍하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찰깍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닐 게다.

더욱이 나의 경우는 두 말 할 것 없다. 왜 퇴고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실감했다. 시상이 떠오르고 얼른 스케치하고 덕지덕지 유화의 붓질이 수 없이 가해져야 그나마 보였다. 그러다간 더 혼탁해지곤 했다. 지인들과 시인 여러분들의 지도와 애정이 보태지기도 했다. 지은이 송창권이라 쉬이 인치기는 아직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아마도 심사 선생님들께서 "다 내린 진한 아메리카노의 '한' 잔 커피보다는 '두' 잔의 양을 담은 깔대기 속 원두의 기다림에 더 기대를 표해 주셨다"고 여긴다. 만개한 꽃보다 터질 듯한 봉우리의 기대감에 더 점수를 주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활짝 피지도 못하고 그저 굳어 버리거나, 떨어져 버릴 봉우리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한다.

한편 만날 과락 수준이었던 아이가 70점대를 받고 기뻐 집 문을 보무도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마음도 한 켵 있다.

중학교 동창 여류시인은 "진정한 시인이라면 시와 악수하고부터는 시를 애인 삼고, 시와 희노애락을 나누며 해로해 간다"고 했다.

"나 정도가" 하고 있었는데, 덜컥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염치없지만, 그래도, 주체 못할 기쁨을 안고 벅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먼저 이런 기회를 주신 영주일보와 관계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밤잠을 설쳐대는 남편에게 "현실을 생각하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늘 안타까운 기대를 거두지 않는 사랑하는 아내 김신영에게 감사하다. 제주시청 공무원인 김정수 시인, 중학교 동창 양순진 시인, 고등학교 친구 강기암 시인, 특히 시집을 건네 주면서 "좋은 시 많이 쓰라"건네 주었던 함민복 시인, 남제주요양원 김영진 목사님 등 여러분들께도 지도와 조언 그리고 응원에 감사를 드린다.

*경력

제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수료
성지요양원 원장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부회장
외도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제주시 월대4길11(2층)

[시부문 당선작]

5월 억새에게 내미는 시

할머니들 아직 하늘로 올라가지 마세요
똑똑 분질러져도 자꾸 휘어져도 같이 살아요
저는 꽃의 키만큼도 닿지 않은 걸요
사람이 사람을 뚫고 나오는 걸 알았네요
할머니의 뻣뻣한 발등에서 푸른 순이 올라오는 걸 봤어요
오늘은 밀알만 한 무당벌레가 어디서부터 기어 왔는지
얇고 가는 마른 대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더군요
모든 것들은 꼭대기라는 정자亭子를 향해 나는 걸 좋아하지요
그러다 갑자기 날개를 펼치고 붕붕대네요
늙어서 너무 길어진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넓은 등이 되어 주셨잖아요
쓸쓸한 할머니의 은비녀 사이로 저수지도 보이네요
저수지는 삶이 관통한 듯 여지없이 파랗군요
누런 풀들 사이로 제 눈에 막 들어오고 있어요
그것은 드문드문 보이는, 만질 수 없는 영애令愛같은 고움
잠겨 있는 옛날이야기 같은 거죠
패물 상자처럼 언제까지나 우리 꽉 끌어안고 있기로 해요
몇 해가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늙수그레한 풀과 호수는
이 계절을 처음 앓는 듯 쑥쓰러워하네요
아, 저 성성한 머릿결 같은 햇빛, 약하지만 발걸음 소리 내는 풀
꿀을 머금고 있는 공기, 바람과 나부대는 나무는
저를 교란 시켜요, 할머니
저는요, 조용히 또 임신하고 싶어요

▲ 임지나씨(시 부문 당선자) ⓒ영주일보

[당선 소감]

며칠 전 서점에 갔었는데 시집 코너가 없었습니다. 작은 서점도 아닌데 내가 못 찾는 게 아닌가 싶어 문의해 보니 직원은 한쪽 구석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서점 바닥에 딱 붙은, 책꽂이 맨 아랫칸, 먼지가 쌓인 곳에 시집들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읽기도 힘든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독자들과 소통이 안 되는 좁디 좁은 시와의 거리에서 난 뭘 얻고자 고군분투 하고 있는 건지 잠깐 상념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말하자면 시를 담아내기에 내가 너무 작은 그릇이란 걸 깨닫기도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시란, 분명 다른 생각, 또, 사물 그 너머의 생각, 허투루 보는 사물의 속성을 꿰뚫어 무엇이라도 저는 시에서 얻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 때문에 힘들었단 말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시를 공부하고 쓰면서, 삶을 많이 위로 받은 것 같습니다. 문학은 내게 위로였습니다. 쪼그려 앉아 다리가 저려도 서점의 남루한 그 시집들을 전 사랑하니까요.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멍해서 좀 주저앉았습니다. 설핏 마취가 된 듯 혼미했습니다. 그리고 서점에서의 쪼그림이 다시 생각났고, 속울음이 일었습니다. 절망의 힘을 다시 믿기로 했습니다. 우석대 안도현 교수님, 교수님은 역시 대한민국의 안도현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진정 흠모했던 유강희 교수님, 교수님 덕분에 시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김혜원 은사님. 조만간 회에 소주 한 잔 올릴게요.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학우들, 만학도 아지매 품어줘서 고맙고, 평생 교육원 시 창작반 선생님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새해엔 더 뜨겁고 끈적거리게 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성실한, 제 시의 첫 독자이면서 시 어렵다고 머리 뜯으며 읽어준 남편 고마워. 무한히 사랑합니다. 시와 소금 임동윤, 박해림 주간 선생님, 언제나 따뜻한 식구처럼 끌어주시고 모든 선생님들 일일이 독려해주시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맞아 죽을까봐 나는, 빗방울까지도 조심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인의 이 싯구처럼, 시가, 내가 필요하다고 속삭여 준 것 같습니다. 한걸음씩 정교하고 예민하게 시에게 다가서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혹시 금명간 비가 온다면 그날만은 비를 맞고 싶습니다. ‘나, 그렇게 열망하던 거 해냈다.’ 라고……. 크게크게 외칠겁니다. 부족한 시에 숨처럼 기회를 불어 넣어 주신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약력

전북 전주 출생.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2015 계간 <시와 소금> 상반기 동시 등단
전북 군산시 수송동로20 한라비발디2단지 201동502호

[시부문 심사평]

인터넷신문의 깊이가 느껴지는 시인들의 열망

병신년 올해 10회를 맞이하는 영주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의 응모자들은 다양했다. 여러 해 동안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일념하나로 작품을 쓰고 지우고 한 원고를 생각하면서 마지막 마무리로 보내온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주에서 공모를 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원고들뿐만 아니라, 국제우편으로 보내온 원고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또한 최근 추세에 컴퓨터 워드로 작성하는 시대에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쓴 작품들의 열정들도 뜨거웠다.

많은 신인작가들의 원고와 우편요금이 아깝지 않게 좋은 작품을 따지기 전에 그 열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 옥고를 고르기 위해 쉴 여유가 없었다.

우선 심사를 하면서 완벽한 시보다는 현대시의 흐름을 반영하되, 그 중 새로운 감각을 지니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가려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본심에 부쳐진 작품으로는 김길전, 김진실, 송창권, 백승권, 임지나 씨의 작품들이었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작품이면서도 오랜 세월 습작의 이력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신춘문예 작품의 취지에 맞게 열정적인 작가의 작품을 고르기로 합의하였다.

김길전의 ‘처남댁’이라는 시들에서는 세 편 모두 산문시 형식인 듯한데, 평이한 언어로도 개성을 살린 시편을 만들어냈다는 장점은 있으나 딱딱한 끝맺음의 어휘로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다.

김진실의 ‘즐거운 식사’는 독특한 제목으로 상상력을 구사하여 맛깔스런 시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상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산문적 어법이 아쉬웠다.

송창권의 시들은 응모한 3 편 중 산문시 형식이 아니어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표현에서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백승권의 ‘늘 같은 색의 겨울’ 이라는 시는 그리 도드라지는 표현이 없으면서도 읽고 나면 뒷입맛이 달짝지근해지는 느낌이 있는 시였다. 다만 제목과 내용이 조금은 거슬렸다.

임지나의 시들은 앞에서 지적한 시들의 단점을 거의 지니지 않고 있어 맛깔스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에 치우치지 않고, 상상력의 유희를 즐길 줄 알면서도 시적 이미지가 난잡하거나 산만하지 않은 장점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으로는 임지나와 송창권 두 사람의 작품이 남아, 심사위원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한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에 이르러, 공동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신춘문예에 공동 수상이 마땅한 일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을 선택하고 다른 쪽을 제외하는 것은 너무 큰 아쉬움이었기 때문이다. 낙선한 분들에게는 격려를, 당선하신 수상자들에게는 큰 박수로 우리 시단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대표심사위원 양대영 영주일보 편집국장]

[수필 당선작]

노루발

자운영 붉게 핀 옷감 위를 노루발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두 귀 쫑긋 지나간 자국마다 박음질된 실들이 오솔길처럼 펼쳐진다. 촘촘한 길 가로 새소리며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챠르르! 챠르르! 할머니가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눈부신 천들이 지어져 나온다.   

  노루발은 재봉틀의 부속품이다. 박음질 할 때 옷감이 밀리지 않도록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지그시 누르는 힘이 없다면 실이 끊어지거나 선이 비뚤어져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중간이 갈라져 끝이 살짝 들린 생김새가 노루의 발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 언제 들어도 정답고 살갑다.

  몇 번씩이나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엄마는 신주단지처럼 재봉틀을 모셨다. 혹여 생채기라도 날까봐 이불로 고이 싸매고 난 후에야 다른 짐을 챙겼다. 이사한 집에서도 가장 호젓한 자리를 차지했다. 재봉틀을 앉히고 구도를 잡은 후에야 다른 가구들을 배치했다. 그건 어쩌면 청상과부로 반백년을 보냈던 외할머니의 체온이 고스란히 스며들었기 때문이리라.

  할머니는 육이오 전쟁에 남편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학도병이던 아들까지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했으니 삶이 얼마나 곡진했을까. 난리 속에 자원입대한 아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밤낮 분간 없이 사방을 헤매며 다녔다고 한다. 수소문으로 듣게 된 아들의 죽음은 청천벽력이었고 할머니는 한동안 실어증환자처럼 말문을 닫아버렸다. 그런 할머니에게선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아련하고 쓸쓸한 냄새가 났다. 뒷산 바위 틈새에 피어난 구절초 향기 같기도 했고 늦가을 들판 위로 피어오르는 수숫대 타는 냄새 같기도 했다.

  할머니는 매일 꼭두새벽마다 장독대에 촛불을 밝힌 후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면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무명치마저고리를 띠 둘러 입고 윤이 나도록 마루를 닦았다. 보리밥 한 소쿠리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잠 덜 깬 내 손을 잡고 집 뒤 작은 암자에 새벽기도를 가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엔 마을초입의 기생집에 들러 바느질거리를 받아왔다.

  앉은뱅이 손틀은 한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론 노루발을 조절해야 바느질이 고르게 된다. 북에 실을 감을 때에도 요령이 있다. 바퀴처럼 생긴 북에 송곳을 끼우고 재봉틀의 손잡이를 돌리면 오동보동 배를 불리며 북이 넘친다. 대롱이 뾰족한 양철기름통 밑동을 누르면 한 방울씩 내어줄 듯 말 듯 한다. 손잡이에 기름 몇 방울이 떨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노루발은 천을 뒤로 밀어내며 걸어간다. 그때마다 나는 산중턱을 겅중겅중 뛰어오르는 한 마리 노루를 상상하곤 했다.

  할머니의 재봉틀은 달그락거리며 한나절 옷감을 지었다. 노루발은 발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기생들의 갑사저고리와 치맛단을 총망하게 밟고 다녔다. 잠자리 날개 같은 치마와 저고리를 만들고 빳빳한 동정을 달았다. 대나무자로 이리저리 재단을 하는 할머니의 숨 깊은 휘파람 소리도 곁들여졌다. 가끔 나를 부를 때도 있었다. 바늘귀에 실을 꿰어야 할 때였다. 실을 꿸 때면 노루발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그윽이 바라보곤 했다. 할머니의 희끗한 머리엔 자투리 실이 올라가 있거나 입술엔 보푸라기가 물려있기도 했다.

  할머니는 가져온 일감이 다 끝날 때까지 밤샘을 했다. 자투리 천이 생기면 손가방을 만들어 수를 놓거나 목수건을 만들었다. 덕분에 설빔으로 한복 한 벌씩은 내 차지가 되었다. 할머니는 여러 손자손녀 중 유독 나를 어여뻐했다. 어쩌면 이목구비가 당신을 빼닮은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옷감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자투리 천으로 만든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는 종일 실밥처럼 폴폴 웃음을 날리고 다녔다.

노루발은 옷감뿐 아니라 자꾸만 비어져나가려는 슬픔도 지그시 눌러준 게 아닐까. 할머니는 시댁도 친정도 의지가지가 없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수십 년 세월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순간순간 닥치는 외로움과 허망함을 새끼손가락만한 그걸로 눌러 가슴 한켠에 꼭꼭 여미며 한 많은 세월을 이겨낸 게 아닐까.

  어느 해 가을, 할머니는 당신이 손수 박음질한 수의를 입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있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돌아가시기 전 잘 간직하라며 재봉틀을 엄마에게 물려주었다. 엄마는 입다 헤진 옷으로 원피스며 천가방 등을 만들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 재봉틀은 꽤 도움이 되었다. 어떤 날은 엄마 방에 새벽이 이슥하도록 불이 켜지고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노루발이 할머니의 슬픔을 눌러주었던 것처럼 엄마의 가난도 지그시 눌러주었을까. 어린 우리들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불편한 것 없이 자랐다. 그 후 연로한 엄마는 나에게 재봉틀을 넘겨주었다.

  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로 또 내게로 대물림되어온 재봉틀은 이제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손잡이는 헐거워져 헛돌기를 하고 북은 자꾸만 실을 끊어 먹는다. 관절이 꺽꺽 소리를 내는가하면 걷다가 퍼질러 앉아 일어나질 않는다. 헐거워진 경첩을 조여 보기도 하고 삐걱대는 나사를 조절하며 윤활유를 발라보지만 종내 옛날의 모습을 회복하진 못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고 사회적문화도 많이 변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엔 집집마다 유행처럼 재봉틀이 놓여 있었다. 이젠 전문수선집이 아니면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러고 보면 요즘 새로 나온 노루발은 빠르기도 하고 주름도 예쁘게 잡아주며 앙증맞기까지 하다. 거기다 실도 자동으로 꿰어준다. 두꺼운 청바지단도 지그시 밟으며 소리 내지 않고 달린다. 그러나 아무리 편리해졌다 해도 할머니의 재봉틀만큼 섬세하진 못하다. 손 때 묻은 바퀴며, 덜컹거리는 소리며, 그 소리를 따라 왁자하게 피어나던 꽃무늬며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없다.

  어쩌면 노루발은 삶을 견디는 무언의 힘이 아니었을까. 가끔씩 사는 것이 고단하고 힘이 들 때면 재봉틀 앞에 앉아 본다. 천천히 손잡이를 돌리면 늙은 노루발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가끔씩 멈추어 “괜찮아, 괜찮아”하고 내 어깨를 토닥거려 준다. 그러면 나는 또 서툰 재봉질로 가슴 속 맺힌 것들을 풀어내어 가만히 내일을 박음질해보는 것이다.

 

▲ 김지희씨( 수필 부문 당선자) ⓒ영주일보

[당선소감] 

낡은 외투를 껴입은 가로수위로 난청의 새떼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잔뜩 흐린 하늘에서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문득, 설움 같기도 하고 회한 같기도 한 것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밀려왔습니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늦은 저녁까지 함께 공부하는 <시거리문학회> 문우들과 수필의 글귀를 열어주시고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주신 김영식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해드립니다. 언제나 따뜻한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아들, 딸 그리고 병상에 계신 부모님께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멀리, 오래 걸어가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벅찬 영광을 안겨주신 영주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약력

1964년 경주에서 출생
동리목월문학관 연구반 수료
시거리문학회 회원
경주시 황성동 용담로92번길27

[수필부문 심사평]

열정의 땀방울이 맺어지는 작가들의 삶

글을 쓰는 사람들의 열망이 하나로 뭉치어 10회까지 온 영주일보신춘문예 수필작품을 앞에 두고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신인작가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세상을 토해내는 글이 어느 해보다 신선하고 풍성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잉태하기까지 감내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출산의 기쁨으로 전율했던 작가들의 떨림이 전해 왔다.

그렇지만 10회를 맞이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영주신춘문예의 기대에는 간발의 미진함이 있었다. 정제된 언어와 촘촘한 구성, 삶에 대한 비의를 담은 작품들을 갈망했지만, 쉽게 심사위원들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본심에 부쳐진 작품으로는 김지희, 김현숙, 이정선, 조일희 씨의 작품들이었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작품이면서도 오랜 세월 습작의 이력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신춘문예 작품의 취지에 맞게 열정적인 작가의 작품을 고르기로 합의하였다

예심을 통해 고른 4명의 작품들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김지희 「노루발」, 김현숙의 「등을 돌려보면」 조일희의 「엄마의 집」, 이정선의 「신문지 꽃다발」를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모두 나름대로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영주일보 신춘문예가 문사들의 등용문으로 튼실하게 자리 잡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당선작 후보에 오른 작품이 한 편 있었다. 바로 김지희의 ‘노루발’로 선정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할머니의 재봉틀을 기억하면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사회가 변하는 것을 재봉틀 노루발이 꾹꾹 눌러서 삶을 견뎌내는 힘을 얻고 사는 게 힘이 들 때 가만히 내일을 박음질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쉬움이 있다면 고유명사에 대한 사용을 명확히 하여 문장의 흐름에 매끄러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신춘문예 당선은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명심하여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구양수의 ‘삼다’를 실천해 나간다면, 김지희 작가는 한국수필문학의 거장으로 성장하리라 확신한다.

당선자가 걷는 문학의 길에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낙선한 분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대표심사위원 양대영 영주일보 편집국장]

[시조작품 심사평]

시조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갈수록 고조

오래 된 것을 좋아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픈 작가들의 열망으로 시조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고조되어 전국적으로 보내온 창작 작품을 보노라면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심사를 하면서 접수된 응모작들의 수준과 기량이 전반적으로 만만치 않았다.

김성진의 ‘마른멸치’는 처음 글을 대하는 순간 본선에 오려놓은 작품으로 마른멸치의 일생에 대한 표현을 잘 표현했지만 인간과 멸치의 본성을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조금은 글을 읽는 데 적응하기 힘들었다.

김숙희의 ‘바다는 아프다’는 어머니의 바다를 노래함에 가슴이 아프지만 운율에 맞추다보니 너무 설명적인 글이 되어 깔끔한 마무리가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윤정희(필명 이윤)의 ‘탐색전’은 깔끔하게 글이 전개가 되었지만 외래어, 한자어 등이 다소 아쉬움을 주었다.

이남희의 시조 ‘휘영청’은 빼어난 어휘 선택으로 한눈에 달빛이 부서짐을 느낄 수 있었으나 주제가 한눈에 들어와서 마음속에 자리 잡지를 못해 감동을 주기에는 약간 부족하였다.

하빈의 ‘슈베르트의 송어, 레퀴엠이 되다’는 가만히 앉아 글을 읽노라면 송어가 송송 뛰어오르는 모습을 그릴 수 있고 시각적인 냄새가 풍기지만 아름다운 음악으로 완성하기에는 부족한 것처럼 시조의 흐름을 만들어서 토해내는 데 조금은 어려운 주제를 선택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아쉽지만 올해는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응모해주신 분들의 실망도 크겠지만 심사를 하는 심사위원과 영주일보사에서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크다.

대신에 영주일보신춘공모의 다음을 기약해본다.

펜을 잡고 글을 쓰고 신춘문예에 응모해주신 모든 이들이 이미 작가임을 말해주고 싶다. 다만 이 신춘문예는 하나의 관문이기에 늘 글 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고 정진해주기를 기원한다. 글을 쓰고 응모하는 작가들의 열정이 있으면 영주일보신춘문예는 영원히 존재하리라 확신한다.[대표심사위원 양대영 영주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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