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음악과 여행’]총 쏴라! 레이디 가가와 함께

2012-05-05     나기자

레이디 가가(26)가 하얀 드레스에 진주구슬 박힌 가면을 쓰고 입국하는 모습을 보고 “동방예의지국 한국을 신경 썼나? 얌전해졌는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각종 언론에서 ‘레이디 가가 파격의상’, ‘충격의상’ 이런 기사들을 내보냈다. ‘아니 이게 무슨 파격이라고? 레이디 가가를 모르시나?’ 과대 표현이라 여겨졌다.

레이디 가가의 입국을 두고 한국 개신교가 시끄럽게 나왔다. 신약성경이나 성경 내용 자체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만들어 졌기에 동성애 등에 대해서 가톨릭에서도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톨릭은 잠잠하고 개신교에서만 난리를 피우니 의아했다. 홍보 하나는 제대로다.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보다 더 쇼킹한 것은 공연을 보러가는 한국 팬들의 패션과 분장들이었다. 나 자신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얼굴에 스티커를 붙이고 붉은 악마들과 응원을 해 본적이 있는지라 그 기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가가 팬들이 펼치는 모습들을 보고는 ‘여기가 한국 맞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안경에다 담배를 붙이는 등 갖가지 장식의 의상들을 보고 ’언제부터 생각하고 준비했을까‘ 싶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 2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삼바축제 정경이 떠올랐다. 퍼레이드를 마친 마차들이 도로 한편에 줄지어 서서는 심사위원들의 점수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지어선 마차들을 보니 기괴한 아이템들이 유독 많았다. 단지 눈에 띄려는 것일 뿐이었음을 알았기에 그저 재미난 구경거리로 여겼다.

퍼레이드가 지나간 광장이며 거리 곳곳에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춤추고 노느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친구들 여럿이 같은 모습으로 분장을 하고는 한데 어울려 다니는 모습들은 즐겁고 행복하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남미를 마약과 저임금에 불안하고 어두운 나라로 여기지만 실제 이곳 사람들에게는 불행이나 짜증, 혹은 보장된 미래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이에 비해 엄한 종교적 통제가 있는 이슬람지역에서는 유흥가의 불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밤의 거리가 충격적이었다. 내국인들에게는 술을 팔지 않으니 남자들도 술을 마실 수 없거니와 술파는 곳이 없으니 해가지면 집으로 가서 드라마를 본단다. 왜 이슬람지역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자살 테러 등이 저리도 많은지 궁금했는데 그들에게 유흥문화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나는 테러를 없애려면 무슬림들에게 술을 마시게 해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한국도 자살이나 타살 뉴스가 없으면 뉴스의 30%는 줄어들 정도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를 망국의 노래라고 했었지만 이제는 피살(避殺)의 노래라고 해야 할 판이다. 너무 부지런하고 너무 성급해진 우리들!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당국에서 여러 가지 대책을 내 놓지만 그 대책들을 보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 단속하겠다는 것이지 그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들을 달래고 어루만져 예쁜 아이들로 되돌려 놓으려는 마음은 조금도 안 보인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그 누가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지”, “남을 괴롭혀야지”하고 범죄를 저지르겠는가. 설사 정신병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병자가 되기까지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들에게 지운 그늘이 없었는지 자신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명분이라는 것을 필요로 한다. 무슬림들이 테러를 하고 전쟁을 일삼는 명분들을 보면 “알라신과 조국에 대한 충정”, “서방 강대국에 대한 대항” 등을 내세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무의식에 대해 한번이라도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이슬람지역에 밤의 유흥이 허락된다면 아마도 상당수의 테러나 전쟁이 사라질 것이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에 모여드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서 친구를 괴롭혀 죽게 하거나 죽인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만약 저렇게 치장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학교에서는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을 하는 아이들을 잡아내고 벌을 주기 이전에 그들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1등하는 아이들을 가진 부잣집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그렇지 않다는 것만 안심할 일이 아니다. 다 가진 내 아이, 내 집의 행복이 그 아이들에게 좌절과 우울을 안겨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번쯤은 해봐야 한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 등장하는 ‘미스 킴’을 죽게 한 것은 잔혹한 이데올로기 분쟁도, 상어 떼가 우글거리는 바다를 건너야 했던 참혹함도 아니었다. 바로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가 남기고 간 총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도둑과 살인마, 철면피들은 있어왔다. 사람들은 그다지 완벽하지도 신성하지도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세상살이를 좀 더 느슨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의 내면에 끓고 있는 용암을 일탈의 퍼포먼스로 풀어주는 레이디 가가의 치장과 행동들은 어쩌면 내 안에 응어리진 총알을 쏴 날리게 하는 비상 탈출구인지도 모른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