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합동시집 『시골시인-J』 출간

제주 마파람을 닮은 봄의 시, 격랑(激浪)의 시 제주 시인들과 작은서점&독립서점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집

2022-05-26     박혜정 기자
합동시집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시인 허유미‧고주희‧김애리샤‧김효선이 참여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제주에 사는 네 시인이 의기투합했을 뿐 아니라 제주의 작은서점 대표(제주살롱, 밤수지맨드라미북스토어)들이 추천사를 쓰고, 독립서점 지구불시착 김택수 대표가 내지 일러스트에 참여함으로써 ‘변방’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을 극대화했다.

대한민국 가장 남단의 섬에 사는 네 명의 시인들은 시 쓰기란 곧 “끊임없는 결핍과 결핍의 싸움”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함께 달리는 호흡을 고민하고 연구하여 이번 시집을 펴냈다.

육지와 단절된 제주에 사는 시인들이 가장 외로운 영역의 장르에 속하는 ‘시 쓰기’를 릴레이 형식으로 함께하면서 서로의 고통과 분투와 슬픔을 손으로 터치하고 연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집이 이룬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네 명의 시인은 모두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를 시에 담고자 했으며, 제주의 빛과 어둠, 양지와 그늘, 환희와 고통, 침묵과 들끓음을 사유(思惟)하고 시로 표현해내고자 했다.

“섬에서 방황하며 잃어버린 시간들. 섬이 주는 자유와 구속의 굴레. 그 속에서 생성되는 끝없는 고뇌와 번민의 흔적들은 시인 각각의 내면을 오롯이 드러내면서도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보듬어 주고 있”(이의선, 추천사 중)다는 표현처럼, 네 명의 시인들은 결핍과 갈망이 결국은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꿈’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고백하며 밤바다 물결 같은 시들을 이 한 권의 시집에 부려 놓는다.

상처가 몸의 중심이었다

숨보다 깊은 물은
상처에서 연록잎을 돋게 하고 나무를 만든다

발끝부터 몸을 거슬러 오는 물의 속살을
밤새 비벼 주는 섬

- 허유미, 「움딸」 부분

외로움이 가득한 사주라서 어디든 흘러들어야만
완성이 되는 물의 사주
봄이면서 봄 아닌 이별의 부장품으로 흙의 날
삽 한 자루 받아 쥐고 벌벌 떨었다

- 고주희, 「흙의 날」 부분

텅 빈 송충이들이 내 얼굴 위에서 꿈틀거리며
천진난만한 두드러기로 안부를 묻는다
그 위로 누런 점박이 쐐기 독을 바르며 지나가고
꿈틀거리는 글자들은 플라타너스 이파리 뒤에서
능청스럽게 나를 갉아 먹는다

나는 쓸모없이 춤춘다

- 김애리샤, 「새벽 세 시」 부분

사실
현무암과 휘파람이 한 핏줄이라는 소문은 놀랍지도 않다
금기를 깨야 완성되는 유일한 출구니까
우리는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는 먼 불빛으로
영원이라는 갈증을 갖게 되었지만

- 김효선, 「짜이보라」 부분

이 시집은 게릴라성 합동 시집 성격을 띤다. 2021년 봄, 경상도에서 활약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조명했던 『시골시인-K』에 이어 이번에는 제주에서 그 바통을 이어받아 『시골시인-J』가 발간되었으며, 전라‧충청‧강원 등으로 다음 바통도 이어질 예정이다.

시집 속에는 네 명의 시인이 써낸 14편씩의 시와 산문 1편이 담겼다. 격랑의 섬 제주에 살면서 바람과 파도를 원없이 들이마신 시인들은 각자의 개성 있는 목소리로 치열한 시정신을 보여 준다.

시인들에게 제주 섬은 곧 시요, 시는 곧 제주 섬이다. 이들에게 시 쓰기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보내는 방법”(허유미)이며, “만신창이 세계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동시에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치유의 영역”(고주희)이다. “불타는 저녁이 내 앞에 서 있어서, 저 ‘멍’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김효선)는 말은 또 얼마나 뼈아픈가.

“누군가를 불러들여 애정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보낼 수 있는 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시들이 피어나는 건 아닐까.”(김애리샤)라고 고백하는 시편들을 만약 당신이 넘긴다면, “가장 외로운 곳에서 쓰는 시를 제주라고 말하고 싶었다”(고주희)는 말에 기필코 동의하게 되리라.

걷는사람 干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