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권주자 인물탐구③]'세대 교체'이인영 후보

2012-01-08     나기자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 도전장을 던진 이인영 후보는 당내에서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이 후보는 2010년 민주당 10·3 전당대회에서 486 정치인 중 단일 후보로 추대돼 조직과 계파 없이 4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하며 야권을 대표하는 40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1964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이 후보는 충주고를 졸업하고 84년 고려대 국문과에 입학하면서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으로 활동하며 집회 현장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설하는 모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는 '학생운동계의 전설'로 불리며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지만, 그 과정에서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석방된 뒤에는 재야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국장, 한국청년연합회(KYC) 지도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러던 중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에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영입돼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2000년 16대 총선 때 서울 구로갑에 출마해 낙선했지만, 재도전 끝에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탄핵 역풍 속에서 당선됐다.

하지만 2008년 18대 총선 때는 대부분의 486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고배를 들었다.

당내 비주류이던 그에게 민주당 10·3 전당대회는 정치적 전환점이 됐다. 진보적 가치를 내건 40대 정치인의 지도부 입성은 민주당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그는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와 범야권 통합 과정에서 협상 실무를 책임지며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과 민주통합당의 출범을 모두 성사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민주통합당 출범 후에는 '젊은 정당, 젊은 대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조직과 계파가 아니라 가치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복지·노동·인권 등 진보적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당의 혁신 외쳤다. 노동계 인사와 농민 등 정치권 변방의 인물들이 당의 전면에 나서는 공천 혁명도 예고했다.

이 후보는 야권 인사 중 지난해 말 별세한 고(故) 김근태 의장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88년 전민련 활동을 계기로 김 상임고문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살아온 궤적도 비슷해 '리틀 GT'로 불린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들의 그늘 아래서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계파 정치와는 과감히 이별을 선언했다.

그는 지난 4일 광주·전남지역 합동연설회에서 "김대중·노무현·김근태 세분의 이름에 기대는 또 다른 족보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 '친DJ', '친노'가 아니라 친노동, 친서민으로 가야한다"고 역설했다.

▲1964년 충북 충주 출생 ▲고려대 국문학·언론대학원 졸업 ▲고려대 제20대 총학생회장 ▲전대협 1기 의장 ▲노무현대통령후보 선대위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위원장 ▲17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 부원장 ▲한반도재단 동북아전략연구소 소장 ▲민주당 최고위원/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