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청렴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송재은 서귀포시청 체육진흥과
지난 8월 홍보대행사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U-20월드컵 홍보 담당자자리에 지원하여 공직사회에 첫 발을 디디게 됐다. 소위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을 앞둬서 공직사회에서는 청렴이 강조되고 있었다. 그리고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회생활 처음으로 청렴교육을 받게 되었다.
학창시절 소풍 때면 어머니는 선생님 도시락도 함께 싸주셨다. 매년 명절이 가까워지면 아버지는 회사 거래처에서는 명절 선물을 보내왔다. 대학 졸업 전 운 좋게 취업이 된 나는 출석 인정문제로 교수님께 찾아갈 때도 손에 무언가를 들고 찾아뵀다. 사회에 나와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던 나는 고객사의 취향을 고려해 명절 선물 리스트를 적는 것이 매년 되풀이 되는 업무였다.
사실 별 이상할 거 없는 일상이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일을 하면서 광고대행사를 통해 비싼 뮤지컬 표를 받아 문화생활을 즐겼으며, 게임 잡지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게임머니를 공짜로 받기도 하였다. 방송사에 있던 친구 때문에 줄을 서지 않고 인기 있던 프로그램을 방청할 수 도 있었다. 청탁의 의미보다는 일을 함에 있어 친목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가끔씩 불편한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유난을 떠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렴교육을 듣고 난 후 TV에서나 보는 몇 백억 뇌물이나 내가 건넨 커피 한잔이나 청탁에 있어 크고 작음은 없었다. 당연하게 행해지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기이한 문화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박혀있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이런 관습들이 쉽게 바뀌지 않을 수 있다. 정 많은 한국 문화에서 관계를 금액으로 규정짓는 다는 것이 불편 할 수 도 있다. 사실 나조차 서울에 놀러 가면 친구에게 전화 한통으로 바로 입장할 수 있는 인기프로그램의 방청도 이제는 신청서를 작성하고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피곤하다.
하지만 법 시행 후,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요가를 퇴근 후 배울 수 있게 되었다며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친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공직자로서의 역할을 생각했다. 나의 피곤함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불편함을 감소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