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리의식은 현실인식에서 출발한다

이상섭 제주시청 안전총괄과

2016-10-11     영주일보

여름은 끝났지만 한 기업 경영자의 도박사건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검찰, 사법부, 재계 등 권력핵심에게까지 번지며 식을 줄 모른다. 고구마의 줄기 정도로 보이던 사건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북경 나비의 날개 짓이 아닐까하는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제법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화면과 지면을 통해 드러난 사회의 부패상은 커다란 상실감을 안겼고, 그로 인한 피로감은 어느 때 보다 많은 냉소주의자들을 양산시켰다.

만연한 부패는 도덕의식의 타락, 부패행위를 견제하는 제도의 결함이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청렴과 공직윤리를 개인의 도덕 문제, 또는 이를 강제하는 표면적 장치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관점은 오히려 문제를 추상화시키며 그 해결책 역시 개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관념적 수준이나 미봉책에 머물게 만든다.

죽은 이를 위한 의식처럼 보이는 장사와 제사가 기억의 공유, 위로를 통한 교감, 연대감 형성, 정체성 확인을 목적으로 하는 산 사람을 위한 의식이듯, 청렴과 윤리의식 역시 철저한 현실적 필요에 기반한다.

안전과 번영이라는 개인적 이익의 효율적인 추구를 위해 생겨난 공동체에서 일부 구성원은 다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공무에 종사한다. 부패 범죄자는 권리와 권한을 구분하지 않고,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며 그 결과는 타인의 이익 침해로 이어진다.

이번 사건처럼, 부패범죄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전염성이 강력하다. 범죄자는 죄를 은폐하고 양심의 가책을 덜어 줄 공범을 물색한다. 약탈의 과실은 철의 장막 안에서만 분배되지만 해악은 장막 너머로 확산된다. ‘정직한 사람만 손해’라는 인식을 통해 전 사회구성원에게 범죄행위에 가담할 것을 촉구한다.

청렴은 개인의 도덕적 만족과 개인적 고양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개인의 욕구 충족과 이익 추구를 위한 필수적, 의무적 자질이다. 선진사회 일수록 보험사기와 무임승차, 경제인 범죄가 더욱 비난받고 혐오의 대상인 것은 이러한 현실 인식에 근거한다.

부패범죄의 피해자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부패 범죄자의 칼은 사람을 찌르지 않고 그가 타고 있는 선체에 구멍을 뚫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직접 사람을 찌르지 않는다고 부패행위를 용인할 수 없는 이유이다. 문제 해결은 부패의 결과, 모든 탑승자들이 검은 바다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