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에서 무더기 직권상정까지…숨막혔던 38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강행 처리된 22일 국회 본회의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날 오후 4시23분 개의부터 오후 5시1분 산회까지 사상 초유의 비공개 본회의와 무더기 직권상정 등 본회의장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3시8분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했다.
여당의 요청으로 오후 4시 본회의가 예정된 가운데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의장석에 자리 잡았고 야당 의원들은 오후 3시30분께 본회의장에 속속 도착했다.
이어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현수막을 들고 단상으로 향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를 가로 막았고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오후 4시8분 의장석 앞 단상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면서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김 의원은 가방에서 최루탄을 꺼낸 뒤 발밑에 던졌고 한 차례 '펑' 소리와 함께 본회의장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일부 의원들은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갔고, 나머지 의원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겨우 자리를 지켰다. 김 의원은 경위들에 의해 긴급히 격리됐다.
10여분이 흐른 뒤 최루탄으로 인해 잠시 자리를 피했던 정의화 부의장이 경위들에게 둘러싸여 의장석에 돌아왔고 오후 4시23분 의사일정 합의 없이 본회의가 개의됐다.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 속에 첫 번째 안건으로 본회의 비공개에 대한 투표가 진행됐고 재석 167석 가운데 찬성 154표, 반대 7표, 기권 6표로 가결됐다.
곧바로 정 부의장이 직권상정한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한 표결이 치러졌고 본회의 개의 5분 만인 오후 4시28분 재석 170석 가운데 찬성 151표, 반대 7표, 기권 12표로 가결, 통과됐다.
이에 일부 야당 의원들은 '무효다', '날치기다' 등을 외치며 소리를 질렀고 곳곳에서는 욕설도 난무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20여명은 일제히 단상 앞으로 나와 정 부의장에게 손수건과 마스크를 던지고 삿대질하며 격하게 항의했다.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된 후 나머지 안건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 부의장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 개별소비세법 수정안 등 나머지 14개 한미 FTA 이행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행법안들은 모두 일방적인 찬성 속에 통과됐고 결국 오후 4시52분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마지막으로 가결됐다.
한미 FTA 비준안 관련 표결이 끝난 후 오후 4시55분에는 김용덕 대법관 후보자와 박보영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무기명 투표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 간 충돌이 발생했다. 김선동 의원과 민주당 최규성 의원은 소리를 지르며 "무효"를 주장했다.
민노당 이정희 의원은 투표함을 들고 던지려 하면서 국회 직원들과 승강이를 벌였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과 김재균 의원, 이종걸 의원 등 20여명은 단상 앞에 앉아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결국 정 부의장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표결 중단을 선언했고 이어 오후 5시1분 산회를 선언하면서 이날 '한미 FTA 전쟁'은 38분 만에 마무리됐다./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