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 공직자의 가치, 청렴
이은주 서귀포시 주민복지과
내가 신규 공무원이었을 당시에도, 전 시․도․시군구 신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다산의 사상과 목민심서를 접할 수 있는 ‘다산 공직관 학습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전라남도 강진에서 동기들과 2박 3일 동안 체험학습에 참여하였던 기억이 난다. 공직자로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 새내기들에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전달함으로써 공직생활에 있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렴’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정약용 선생의 청렴함이 드러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16년의 유배생활에도 청탁을 거부한 정약용’ - 정조의 총예를 받은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집필할 정도로 민생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관의 부당한 요구를 바로잡는 일이 백성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정약용에 대한 반대파를 늘려가게 되었고, 정조의 죽음 이후 결국 반대파의 격렬한 비판을 받아 16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유배중인 어느 날 아들 정학연이 정약용에게 편지를 보내었다. 「귀양살이 고통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소자가 해배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판서로 있는 사촌 처남 홍의호와 아버님이 해배되는 것을 막고 있는 이기경 대감과 강준흠 대감에게 용서를 구하신다면 일이 잘 풀릴 듯 싶사옵니다.」 이에 정약용이 답장을 보내니 아들이 흐느껴 울었다. 「아들아! 천하의 기준에 옳은 것을 지키며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 옳은 것을 지키며 해를 입는 것은 그 다음이며, 옳지 않는 것을 추종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 세 번째, 가장 낮은 것이 옳지 않는 것을 추정하여 해를 입는 것이다. 네가 제시한 방도는 필시 세 번째, 네 번째 등급이니 내가 어찌 이런 일을 하겠느냐. 나를 석방시키는 것을 저지시킨 작은 일 때문에 내가 절개를 굽혀서야 되겠느냐?」
이렇듯 다산 정약용은 긴 유배 생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절개를 굽히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우리 공직자들 대부분은 다산 정약용 선생처럼 본분을 지키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열심히 노력하고, 창의적인 업무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자기본분을 망각하고 부정부패를 저질러 공직사회는 물론 주변 사회도 어지럽게 만드는 소식을 접하게 될 때는 묵묵히 일하고 있는 동료 공무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공시’라 불릴 정도로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공직사회에 들어와 있다. 공직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백 번 천 번을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청렴의 의미를 항상 되뇌며, 가슴 깊이 새겨놔야 할 것이다.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에 정치에 다시 입문할 수 있는 기회도 과감히 거절하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물려주신 어제의 청렴함을 내일의 후배 공무원들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오늘의 우리가 단단하게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