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칼럼](102)나는 종교가 없다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6-04-04 영주일보
내 친구가 있었는제 그는 자신이 독실한 교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종교인보다 훨씬 많이 잘못을 저지르고, 말과 행동이 박애와는 너무 멀다. 남에게 말할 때는 아주 독실한 교인이지만 자기 이익에 있어서는 인정사정이 없게 보이고, 가끔 고해성사에 대하여 말하는데 고해성사때 자기의 잘못을 모두 말하면 사해주신다고 하였다. 교해성사 후에는 한 점 티끌만큼도 죄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죄가 많아 죄에 눌려 걷지도 못할 사람이 많은데 티끌만큼한 죄도 고해성사로 사함을 받았으니 그때부터 죄를 약간 짓는 것은 괜찮은 것처럼 말하니 이 얼마나 무섭고 한편 편리한 신앙인의 삶인가. 나는 종교를 믿지 않아야 죄를 사할 곳이 없고 죄를 사함을 얻지 못하니 짓는 죄를 적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지은 죄에 눌려 숨을 거두게 될터이니 가능한한 죄짓지 말자. 종교 믿으면 죄를 너무 많이 짓게 될 터이다. 안믿어야 좋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천주교는 어떤가. 기독교 이야기 했더니 천주교는 안그렇다면서 하도 권하여 천주교에 가보았다. 미사가 진행되는데 잠자리채 같은 성금 넣는 주머니가 지나가면 사람마다 얼마씩 넣는다. 나는 돈이 없으니 마루만 보고 있으면 잠깐 머물렀다가 그 매미채가 지나간다. 몇 번 당하고 나니 나는 더는 못나갔다. 그리고 돈이 세상에는 제일 귀하고 좋은 것이다. 내가 공부 잘하고 얌전하고 착해도 돈이 없으니 어디서도 인정을 못받는다. 예수님, 마리아상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천주교도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지. 무일푼은 모임에 동참하지 못한다. 모르겠다. 아주 뻔뻔해서 규칙을 안지키고도 가책이 없고, 어울리는 재주나 있으면 모르지만 하여튼 어느 정도의 돈이 없다면 모든 사람의 관심 밖에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고등학교때의 경험으로 종교에 무관심자가 되었다. 무종교인인 것이다. 무종교인은 의지할 곳이 없다. 다만 자신만을 의지하여야 한다. 자신을 의지하려면 자신이 굳건히 서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양심에 꺼리는 일을 가능한한 의식적으로 하지 말아야 자신이 서있을 수 있다. 죄를 가능한한 덜 짓고, 적게 지어야지 지을 수 있는 껏 죄를 짓다가는 그 죄에 눌려 죽게 되니까.
그렇다. 이것이 나의 종교관이 성립된 과정이다. 사실 종교를 믿는 사람 중에 깨끗하고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이 있다. 하지만 종교믿는 사람이 흔치 않는 옛날보다 살기좋은 사회가 되었다고는 말 못한다. 종교도 지식도 평화로운 사회, 질서있는 사회를 만드는 절대적 요소는 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인간관계에서는 인간적 사랑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충만해야 한다. 살기좋은 사회는 그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려는 노력을 할 때 가능하다. 사이비종교인, 정의롭지 못한 지식인 이들은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예수의 박애와 석가의 자비를 충실히 실천하지 못하지만 어떤 때는 잘못을 적게 범하려는 무종교인인 내가 나아 보일 때가 가끔 있다.
내세의 극락이나 천당은 가식적 기도와 경전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잘 활용하는 혓바닥에 있지 않고, 진심으로 경전의 내용을 실천할 때 종교인다움이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면 사회도 좋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