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칼럼](101)오만함이 부른 사고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6-03-26     영주일보

겸손은 미덕이 되지만 오만은 부덕이지 결코 미덕이 되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오만해지고 남보다 잘난척 해보이고 싶고, 남을 얕보고 업신여기면 속이 시원해질 것이라고 느껴지는가 보다. 그러나 결과는 불이익과 주위의 호감을 잃을 뿐이다. 안좋은 평판만 있을 뿐이다. 나는 중앙로에 있는 16평 땅에 3층 짓고 나도 모르게 오만해졌다. 이사를 가고 계산해보니 모든 부채를 청산하면 집은 내 것이 되어 있었다. 이제부터 열심히 장사하면서 번 돈은 내 것이 되겠구나 생각하니 마음 속에서 우쭐한 마음이 솟아났다. 그렇게 움츠리고 기 못펴고 서러움 당하고 살아오다가, 이젠 나도 중앙로에 집을 가진 어엿한 점포주인이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는 사람들아, 이제 날 보라 하는 마음 속에 나는 더 이상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발동하고 있음을 일을 저지르고 나서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중앙로로 이사하고 나는 신이 났다. 이제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자본을 마련하여 전국을 돌며 좋은 상품 염가로 구입해다 많이 팔아 돈 많이 벌어야지 하고는 제주은행에서 당좌대출을 1백만원 받고 집에 있는 돈까지 합쳐 몇백만원을 만들고는 부산으로 가려고 공항으로 나갔다. 여객선편으로 다니던 것을 변경하여 항공으로 다녀야 시간 절약되고, 시간이 곧 돈이 아니던가. 참 고급스러운 생각이었다.

출발 30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수속을 마쳐야 하는 것을 이륙 5분 전에 공항에 도착하니 모든 절차가 마감되어 탑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탑승 불가라는 관계자의 말은 아랑곳 않고 ‘왜 시간이 5분이나 남았는데 탑승 못하느냐’며 항의하였다. 그래도 탑승은 불가라는 대답에 화가 치밀어 공항 사무실로 들어가 ‘나는 대단히 급한 사람이다. 화급한 일이 있어 꼭 가야 한다. 항공기가 이륙준비도 안하는데 5분이면 수속하고 충분히 탑승할 시간이다. 가져갈 화물도 없고 몸만 간다’고 목청 돋우어 탑승시켜 줄 것을 요청했더니, 사무실에서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웬만한 사람은 항공사 직원이 탑승수속 창구에서 하는 말을 따르는 것이 예사인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큰 소리로 따지듯 탑승을 주장하니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급히 수속을 하고 타라고 해서 나는 ‘그러면 그렇지. 나도 목소리 내며 살만한 사람이야’이렇게 생각하며 탑승하고, 부산까지 가면서도 가슴이 후련하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성사시켜야지 뒤 물러서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심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방을 떨고 있었다.

부산 도매상에 들러 사장을 만나 뵙고 오랫동안 거래해오던 거래처의 거래잔액을 청산하였다. 부산도매상 사장이 ‘이 사람이 나와는 거래를 끊는구나’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것 같다. 나의 태도도 그만큼 우쭐해 있었을테니까. 전 같으면 식사부터 하자고 할 사장님은 차 한 잔도 대접이 없다.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올렸더니 점포 밖에 나와서 “잘 가시오, 어디까지 가시렵니까?”하는 것이었다. “서면에 갑니다”하였더니 “택시타고 가세요”하면서 택시를 잡으려 하였다. 나는 “택시는 무슨 택시입니까? 바로 곁에 버스 정거장이 있는데 이제는 부산지리도 알만큼 알고 버스타렵니다”하고 헤어졌다. 이제부터 돈 벌어야 하는데 한 푼이라도 아끼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할 때라고 마음을 다져먹었다.

버스에서도 마음은 들떠 있었다. 무슨 상품 어떻게 구입하고 어디다 판매하고, 이렇게 기고만장한 생각을 하면서, 나도 앞으로는 기죽지 말고 살아보자.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니 매사에 자신이 있었다.

내 옆에 젊은 신사가 다가서서 몸을 밀착시켜 미는 것이었다. 나도 어깨에 힘을 주고 떡 버티어 물러서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미는 사람이 있으면 옆으로 얼른 비켰었는데 오늘은 아니다. 차창 밖을 보면서 내 앞날에 희망과 서광이 찬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밀착하던 청년신사는 어디서 내렸는지 없어졌다. 갑자기 안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이 무릎 밑으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어서 안주머니를 만져보았더니, 안주머니는 찢겨지고 돈은 없어지고 지갑만 밑으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청천벽력이었다. 내 희망이요 나를 그렇게 당당하게 하고 오만하게 한 그 돈이 소매치기 당한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나는 버스가 정차하자 무의식 중에 내렸다. 그리고 뒤로 앞으로 두리번거리면서 또 돌아서고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지 않은가. 가만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 이렇게 하면 어떡하나. 길 가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 하지 않는가. 침착하자. 천천히 걷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좌천동 부산역에서 서면까지 걸어갔다. 눈 앞이 캄캄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지. 해결방법이 없었다.

서면 부전동에 얼굴 안보고 삼년 거래한 허진욱 사장이 계셔서, 그 분의 방에 가서 드러누워버렸다. 허사장은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음을 눈치채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정을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소매치기 당한 이야기를 했더니 즉시 내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나를 위로해야겠다고 하였다. 내 아내는 “그 돈이 큰 돈이지만 사람이 죽지 않은 것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어서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너무도 감사했다. 경찰에 신고하라는 사람도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부산 소매치기들은 경찰이 다 알고 있겠지만 내가 신고하면 그들과 뒷거래하고, 나만 오라 가라 수 없이 경찰에 드나들게 하고 못잡았다고 할 게 불보듯 하기에 신고를 포기했다.

기 죽고 어깨 처진 채 집에 오니 집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하지만 혼자 부엌에 가서는 울고 있었다. 참으로 가슴 아팠다. 당좌대월은 막아야 한다. 수협에 내 친구가 있어 적금을 1회 불입하고 대출받아 대월을 해결하고 적금을 3년 불입하였다.

나는 값이 싸게 배운 것은 그만큼 가치도 없고, 뼈 속에 사무치지도 않는다. 이번에도 오만불손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오는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왜 공항에서 갈 수 없다는 것을 억지로 가나. 상식적으로 비행기 이륙 5분 전이면 모든 절차가 완료되어 비행기 출입문을 닫을 시간이니 갈 수 없는 것은 명백하고, 이것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옳았었다. 너가 건방지면 그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가를 가르치는 시험에 든 것이다. 택시비가 얼마나 든다고 권하는 것을 뿌리치고 버스를 탔는지. 지긋이 미는데 왜 얼른 물러서지 ‘내가 왜 밀리나’하는 오만으로 버티었을까. 이 오만과 거드름이 결국 이런 결과를 가져오고 3년 고생을 한 것이다.

이 일이 있는 후로 될 수 있으면 오만방자하지 말자고 결심하였다. 순간순간 이 생각을 못하여 불손할 때도 있지만, 곧 지난 날의 일과 결심을 떠 올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오만과 불손을 밀어내버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비싸게 값치르고 배운 것을 몸과 마음에 새겨 다시 그런 함정에 빠지는 일은 말자. 아직까지는 그런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라도 겸손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어느 순간 깜빡할 때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