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情)과 정(正)
송윤진 제주보건소
2016-03-11 영주일보
그런데 이 ‘정(情’)이 공적인 영역으로 오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보자. 직원A는 평소 업무가 많다. 항상 피곤한 그에게 어느 날 민원인B가 찾아왔다. 들어보니 B가 요청한 것은 선례가 없는 일로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A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일을 더 늘리고 싶지 않았다. 결국 민원인B는 형식적인 응대만을 듣고 돌아가게 되었다. 며칠 뒤 직원A에게 동네의 친한 형C가 찾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민원인B가 요청했던 것과 같은 걸 요청하는 거였다. ‘아이고, 친한 형이니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방법은 찾아봐야지...’ A는 바쁜 시간을 쪼개 C의 요청을 검토해본다. 검토 결과 다행히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시행가능한 일이었다. A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친한 형C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법의 테두리 안이다. 문제될 건 없다. 직원A가 민원인B에게도 C를 대하듯 같은 태도로 검토했다면! 말이다.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은 ‘동향’이라는 또는 ‘같은 학교’라는, 바로 학연, 지연, 혈연의 ‘온정주의·가족주의’였다.
새삼스런 이야기다. 행정학 어느 교재를 펴든, 관련된 어느 글을 읽든, 한국의 조직문화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온정주의·가족주의’이니 비단 제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영향에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겠는가. 누구나 경계해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막상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제주도는 섬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속에서, ‘괸당’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지역·고향의 공동체가 잘 유지되고 살아있는 특성 때문에 그 영향이 좀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 제주가 청렴1위의 도시가 되려면, 반드시 조심해야 할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전화를 받았는데 아는 사람인가? 그럼 일단 경계하자. 아는 사람을 섭섭하게 할 수 있는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제주의 따뜻함을 사랑한다. 그 따뜻한 정(情)이 부정(不正)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공적인 영영에서는 正만 찾자. 바로 “공정”이다.